‘에코 樂 갤러리’ 아트컬럼입니다.

최후의 문명[2]-한국미술의 미래를 향한 좌충우돌의 여정!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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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인류는어떻게역사가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

스키타이 유적 발굴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헤르만 파르칭거! 세계에서 몇 안되는 선사시대 고고학 전문가입니다.오직 유물과 유적으로만 말을 하죠.해석이나 연결이 안되는 부분은 그대로 잘 모르겠다고 인정합니다.어쩌면 호랑이 담배 물던 시절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일지도 모르는데,천하의 파르칭거라도 어찌 다 알겠습니까?

자 그러면...흑해와 카스피해 연안의 스키타이족이 어디서 왔는지...파르칭거가 안내하는 선사시대로 들어가 봅니다.그러니까 10년도 아니고,100년도 아니고,1,000년도 아닌 무려 700만년전...아프리카중부 어딘가의 나무위에는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라는 인간과 침펜지가 분화 직전의 유인원이 살고 있었습니다.이때 우리 원시뇌에 각인된 원초적 공포인 고소공포증,파충류(뱀...나무위에 올라와 인류의 조상을 괴롭히던...),거미와 같은 곤충류(어쩌면 송충이도..ㅎ)등이 형성 되었을 것입니다.

이윽고 390~320만년전 기후변화로 울창했던 숲이 사라지고 건조한 사바나 초원으로 변하자, 호미니드는 더이상 더이상 올라갈 나무가 없어지지요.그들은 바로 지상으로 내려와 직립보행하기로 큰 결심을 합니다.에디오피아에서 침펜지 보다 약간 큰 루시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그로부터 100만년이지난 270만년전 동아프리카 올두바이 협곡에서 올도안 석기(자갈석기...자갈을 바위에 세게 던지면 여러분들도 만들 수 있음..)...돌맹이를 의식적으로 깨뜨려 목적있는 도구로 만든...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등장하지요.드디어 유인원과 인간이 분화되는 결정적 순간이 온 것입니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채식주의자 비건이었습니다.하지만 200만년전 좀더 진화한 인류는 짐승의 사체에서 썩은 고기를 도구를 활용하여 발라먹어 단백질을 섭취합니다.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 다니는 호모 하빌리스!!!잘 아시다시피 단백질은 근육과 뇌 형성에 필요한 영양소입니다. 한번 고기맛을 맛본 인류는 드디어 썩은 고기 말고...싱싱한 고기를 찾기 시작하지요.바로 사냥을 본업으로 하는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합니다.신선하고 영양가 높은 단백질 섭취는 근육과 체격...그리고 무엇보다도 두뇌를 비약적으로 발달 시킵니다.게다가 불까지 활용하게 됩니다. 드디어 인류는 따뜻한 아프리카를 떠나 멀리 추운 유럽지방까지 장거리 여행을 할 준비가 된 것이지요.혹독한 빙하기에도 생존하고, 열대 우림을 통과하여 우여와 곡절 끝에 한국에도 왔어요.ㅎ

다음엔 선사시대 인류의 이동과 식생에 대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빙기와 간빙기와 같은 기후변화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겠습니다.그리고 호모 에렉투스의 유럽과 서아시아 정착과 네안데르탈인과의 관계...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동굴에 그려논 엄청난 분량의 동굴벽화들...드디어 미술이야기가 시작됩니다.이 구석기부터 신석기 시대 주인공들의 한 지류가 후에 스키타이족이 될지도 모릅니다.ㅎ


5-3. 인류는어떻게역사가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잃어버린고대문명 - 알렉산더 고르보프스키

대빙하기와 지질연대인 플라이스토세가 거의 끝날 무렵인 1만2,800년전 지구에 불청객이 찾아옵니다.그린란드 히아와타 지역에 소행성급 운석이 충돌하지요.히아와타 빙하 밑에 서울 크기만한 대형 충돌구가 발견된 것입니다.간빙기를 눈앞에 둔 지구는 충돌로 인한 먼지와 재..그리고 수증기로 태양빛을 가려 다시 빙하기가 강화되는 신(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기를 맞습니다.

신생대 3기 플라이 스토세는 180만년 전부터 1만1,800년 사이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인류의 구석기 시대가 관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학자들은 70만년전~12만년전 까지를 전기 구석기 시대,12만년전 부터~3만5,000년 까지를 중기 구석기 시대,3만5,000년 부터 1만 1,800년을 후기 구석기 시대로 보고 있지요.플라이스토세 다음이 간빙기인 홀로세인데, 그 홀로세가 시작되기 약 1,000년 전쯤에 소행성이 충돌되었다는 것입니다.다시 혹독한 추위가 엄습해서 지구표면에 갑자기 엄청난 빙하가 쌓입니다.물론 충돌 자체도 지구적 대사건이었지만,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 빙하가 녹으면서 지구상에는 대이변이 속출합니다.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높아져 지구상의 많은 대륙이 사라지거나 열도로 변하고(인도네시아,필리핀,일본도...) 이때 구석기인들이 건넜던 아메리카 대륙과의 연결 통로인 베링 육교가 침수되지요.이때의 상황은 전세계 각 민족의 신화와 전설...그리고 고문서에 고스란히 담겨있으며,특히 수메르와 잉카 고대 달력은 정확히 1만1,652~3년을 특정합니다.

빙하기는 인류의 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발생 원인에 대해 잠시 살펴봅니다.지구 자전축이 주기적으로 변해 생긴다는 설이 있지요.(극소수설이긴 하지만 싸이의 강남스타일 때문에 지구 자전축이 기울었다는 썰도 있습니다.ㅋㅋ) 또한 태양의 복사열과 관련된 설로, 간빙기가 되어 기온이 올라가면 해수면이 높아지게 되고 육지 면적이 줄어들게 됩니다.(우리는 대륙을 도모하면 되지만....일본은 어쩔...ㅠㅠ)그러면 지구의 복사열이 적어지고 지구는 다시 추워지기 시작하여 바닷물이 빙하로 변합니다.그러면 해수면이 다시 낮아져 사라진 육지도 다시 나타나고 열도도 랜드가 되는 것이죠. 아이러니 하게도 인류는 이 빙하기에 대규모 이동을 합니다.날씨가 추워지고 건조해지니...식량이 부족해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겠지요.마침 육지가 드러난 해안가를 따라 해뜨는 동방을 향해 떠납니다.1만1,800년전에 간빙기가 시작되어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북극 빙하가 녹아 북극곰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는 것을 보니 확실히 간빙기인 것은 맞습니다.특히 예전과 달리 도시에서 내뿜는 복사열이 많아 빙하기 주기가 빨라 질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하지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빙하기가 오려면 아주 멀었고요.설령 빙하기가 오더라도 연평균 6~10도 기온이 낮아지는 수준이지 재난 영화속의 그런 추위는 아닙니다.자랑스런 우리 조상인 호모에렉투스,네안데르탈인,호모사피엔스도 그 빙하기에도 살아 남았으니까요. 

잠시 제가 삼천포로 빠졌었군요. 다시 아프리카 호모에렉투스로 돌아와서...빙하기가 오고...울창한 숲이 사바나 초원으로 변하자 그동안 고기먹고 체력을 비축한 호모에렉투스....드디어 정든 아프리카를 떠나 먹이를 찾아 북진합니다.이윽고 북아프리카인 이집트에 도착하자 좌익과 우익으로 갈서게 됩니다.ㅋㅋ 국내 미술해부학 최고 권위자 조용진 교수님은 선천적으로 주시야가 좌시안인 사람은 좌측으로...주시야가 우시안인 사람은 우측으로 이동했다고 설명합니다.두눈을 부릎뜬채 오른손을 쭈욱 내밀어 10여m거리의 특정한 물건을 겨냥해 봅니다.그리고 왼쪽 눈을 감아도(오른쪽 눈을 감으면 핀트가 나감) 그대로 있으면 주시야가 우시안.... 그 반대면 죄시안이죠.각자 해보시고 댓글로 그 결과를 달아 주세요. 대부분 우시안 일 것입니다.우리는 우익 호모에렉투스...사피엔스의 후손입니다.ㅋㅋ

여하튼 진행 방향으로부터 좌측으로 이동한 일부 좌시안들은 지금의 지중해 남단 해안가를 따라 이동하다 당시에 육지가 된 이베리아 반도를 건너 유럽에 진입합니다. 우시안들은 훗날 비옥한 초승달 지역으로 알려진 소아시아 근동으로 이동하지요.이들 중 좌시안을 가진 일부는 발칸반도,이탈리아,남프랑스 해변을 따라 산개됩니다.바로 빙하기에 동굴속에 거주하며 주로 사냥을 하며 흔적을 남긴 동굴벽화의 주인공들이죠.미술 해부학에서는 좌-우 시안을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좌시안을 관장하는 우측 뇌는 동작과 거리..그리고 공간감을 관장하기 때문에 수렵에 특화된 눈이라고 해석합니다.아무래도 척박한 환경속에서 한정된 식량 쟁취와 생존를 위해 살아움직이는 들소나 사슴을 사냥하려면 원근법과 공간감에 익숙한 눈을 가지도록 유전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전형적인 싸움군,약탈자 ,정복자로 진화 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 결과 이 좌시안들의 미술이 역동적이고..공간감, 특히 원근법과 명암 표현에 능합니다.남유럽의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를 보면 이미 원근법이 그 당시부터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죠.미술사에서는 원근법을 르네상스 초기의 브르넬레스키가 원리를 발견했다고 하지만,이전 암흑기 천년 동안 기독교 이콘화는 기독교의 탄생지이자, 우시안들의 정착지인 소아시아에서 왔기 때문에 단면적이고 개념적인 것과 대비해서그런 것이지 사실은 원근법의 재발견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우측으로 따뜻한 열대 우림의 해안가 따라 이동한 우시안의 우익 인류는 어떨까요? 꽉 막힌 열대림은 우신안들의 시각을 가로 막아 상대적으로 촉각,청각,후각에 예민하게 진화 됩니다.이들의 미술은 눈에 뵈는게 근거리 것 밖에 없어 원근과 명암없이 단면적이 개념적이지만 굉장히 디테일합니다.우리 문인화나 초상화, 그리고 민화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심지어 원근법과 하나의 소실점도 개무시하는 역원근법...다시점도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세잔이 울고갈 정도....)또한 채집할 식량들이 지천에 널려 있어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이 순둥이들로 진화하게 되지요.이들은 순차적으로 메소포타미아...인도...등지에 정주하지만, 인구가 계속적으로 늘어나자다시 이동을 시작합니다.동남아 순다랜드에서 분화하여 일부는 호주로..나머지는 남중국을 거쳐 서해를 걸어서 한반도와 육지화된 일본을 거쳐 베링육교를 지나 아메리카로 진입하지요.문제는 앞에서 설명한 대로 기상 대이변...1만1,800~1만1,650여년 사이에 해수면이 차올라 더이상 도미하지 못하고...한반도와 만주등에 꼼짝없이 갇히게 됩니다.아프리카 호모에렉투스가 가지고 다니던 전기 구석기 시대의 아슐리안 석기가 임진강변인 연천 전곡리에서 발견된 이유입니다.적어도 우리 조상은 70만년~12만년 전에 한반도에 도착했다는 증거가 되죠.이제 반만년..5,000년 역사는 식민사관을 만든일본에게 되돌려 줘야겠습니다.ㅎ



5-4. 인류는어떻게역사가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잃어버린고대문명 - 알렉산더 고르보프스키/호모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호모 에렉투스는 올도안 석기로 200만년~150만년을 아프리카에서 버티다,150만년 전후로 아슐리안 주먹도끼로 무장한 채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아시아로 확산됩니다.자바원인과 베이징 원인이 바로 그들이죠.한반도에는 유골이 발굴된 적이 없고 아슐리안 석기만...(국제 특송으로 온것은 아닐테고...ㅠㅠ) 특히 약 50만년 전에는 이들중 좌시안의 호모에렉투스가 알프스 이북 중부유럽에 나타납니다.바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인데요.당시 유럽은 엘스터 빙하기로 매우 추웠습니다.이들은 타고난 사냥꾼으로 180cm~250cm의 창을 왼발을 앞으로 두고(왼발을 먼저 내딪는 것은 좌시안들의 특징...왼발을 앞에 두는 그리스 동상들...미군의 행군시 왼발,외발-your left..your left...,특히 문자도 왼쪽부터 시작...) 몸통의 회전력을 극대화 시켜 창을 70m나 날려 사냥을 했습니다.지금의 우리보다 근육이 발달했으며 공간지각능력(원근법,공간,명암법 등이 잘 발현된 서양화) 월등히 뛰어났다고 보면 되겠습니다.이러한 사냥 능력은 당시 발견된 유골에는 돌칼로 베인 흔적이 남아 있어 전쟁과 약탈에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학자들은 빌칭 슬레벤에서 출토된 규칙적 선이 그어진 코끼리 정강이뼈는 인류 최초의 미술작품으로 추정합니다.

중기 구석기시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 부터 분기된 것으로 추정되는 네안데르탈인은 43만년 전부터 4만2천년까지 북 아프리카와 유럽 전역,근동 및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합니다.북아프리카에서 좌측으로 분기되어 지중해 남안을 따라 유럽에 진입한 인류의 후손으로 보이네요. 혹독한 빙하기에도 생존했으며 다부진 체격에 얼굴이 길고,상체에 비해 하체가 숏 다리(그래서 말을 탔나?ㅎㅎ)이며, 저처럼 눈썹 윗부분이 두드러지게 튀어나온 특징이 있지요.특히 코가 크고 긴데....추운 빙하기에 폐에 공기가 닿기 전에 약간 데워서 보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진화 한것으로 보입니다.주위를 한번 둘러보세요.코큰이가 있는지..ㅎㅎ 영국의 스완즈컴 원인과 바덴뷔르템베르크 원인은 후기 호모에렉투스임에도 불구하고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둘이 꽁냥꽁냥 했든지,아니면 에렉투스가 진화한 것으로 봅니다.네안데르탈인은 전형적인 사냥 전문가로 메머드,털 코뿔소를 집단 사냥하며 살았는데 부상당한 흔적이 있는 유골을 보아 그들의 삶도 녹녹치 않은것 같습니다.특히 사후 세계를 믿었는지 최초로 죽음을 의식한 장례를 치릅니다.

이쯤에서 나와야 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바로 유발 하라리의 호모사피엔스입니다.네안데르탈인은 비록 멸종했지만 그들의 유전자는 현생인류에도 남아있지요.유전자의 약 1.2~2.1%가 섞여있어,학자들은 호모사피엔스 종의 편차내에 있다고 봅니다.특히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은 아프리카 게놈보다...유럽 아시아 게놈에 가깝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장황하게 좌시안을 가진 유럽과 서아시아,중앙아시아의 선사시대 인류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비록 우리 민족을 구성하는 선조들 중 다수는 우시안을 가지고 따듯한 해안가를 따라 먼저 한반도에 도착했지만....(평화를 사랑하는...),먼 훗날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초원길을 통해 한반도에 도착하는 북방 기마민족의 선조들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구요.호모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사냥과 끈질긴 생존 본능이 그대로 유전된 호모사피엔스의 한 지류가 스키타이족으로 진화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다음은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와 총균쇠,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에 나오는 호모사피엔스가 근동의 비옥한 초승달지역과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인더스강 등지에서의 정착과 흑해,카스피해 연안의 스키타이족과의 관계에 대해서 풀어보겠습니다.



5-5.

호모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인류는어떻게역사가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잃어버린고대문명 - 알렉산더 고르보프스키

유발하라리는 원래 '중세전쟁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모든 공부가 그렇듯이 끝은 서로 통해 다양한 영역을 넘나 들며 지적 유희를 즐기고 있지요.참고로 중세 십자군 전쟁에서의 특수작전만을 그린 그의 초기 작 '대담한 작전'과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곁드려 읽으면 더 재미납니다.유발 하라리는 다른 인류학자들과 약간 결이 다른 주장을 하면서 호모 사피엔스를 시작하는데요.바로 인류는 순차적인 진화를 한 것이 아니라....200만년전부터 1만년전까지 지구상에는 다양한 종의 인류가 살았다고 보더군요.마치 오랑우탄,침펜지,고릴라,개코원숭이 등이 지금도 공존하듯이 말입니다.네안데르탈인,호모에렉투스,호모사피엔스 등이 공존하다 다른 종들은 다 멸종하고 사피엔스만 살아남은 셈이죠.

호모사피엔스의 흔적은 25만년전~15만년전 사이에 호모에렉투스가 떠난 아프리카 남부와 동부에서 유골이 발굴됩니다.해부학적 특징으로 불을 활용하여 음식을 익혀먹었기 때문에 치아와 턱이 작아지고 뇌크기는 현대인 수준이었는데, 호모에렉투스의 이동경로를 따라 7만년 전에 아라비아 반도로 나타나더니, 이후 유라시아 전 대륙으로 산개됩니다.믿고 싶지 않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도착하면 토착 인류는 거의 몰살합니다.바로 언어를 통한 사회적 기능 (의사소통,교역)과 생존 기술의 발달...그리고 미적 감각을 가진 심미안 때문에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에서 폭력과 전쟁,그리고 대량 학살을 하며 인종 청소를 한 셈입니다.이른바 언어와 미술과 같은 상징체계로 지식과 경험의 축적함으로써 생존 정보의 교류와 전파가 가능했기 때문에 막강한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이죠.

이런 호모 사피엔스 중 좌시안을 가진 약 7만 5,000년 전에 근동 아시아를 거쳐 아랄해,카스피해 너머 중앙아시아 초원지대까지 진출합니다.나머지는 우시안은 아프리카와 환경이 비슷한 해안로를 따라 이란,인도,순다랜드,일부는 호주...남중국, 한반도,배링 육교, 아메리카로 넘어 가지요.중국 남부는 5만년 전 도착했으니..한반도에는 늦어도 4만년 전에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학자들은 후기 구석기 시대를 3만5,000년 전부터 ~홀로세 시작 전후인 1만년까지를 보기 때문에 한반도에 나타난 사피엔스는 후기 구석기시대를 주도한 것으로 보이네요. 얼마전 임진강변에 있는 구석기 유적지인 주월리 유적은 5만년 전이라고 하니 얼추 들어 맞습니다.이 우시안의 사피엔스는 비교적 수렵과 채집 환경이 풍부한 지역을 통과해서 별다른 경쟁 없이올라왔기 때문에 유럽과 중앙 아시아로 진출한 사피엔스에 비해서 성정이 순했을 것으로 보입니다.오늘날 우리 한민족을 형성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 사피엔스는 근동(소아시아,지금의 중동,서아시아)에서 좌시안은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로...우시안은 인도와 순다 랜드로 향하는 분기를 이룬 후 먼 훗날 순차적으로 한반도에 도착하여 운명적 해후를 합니다. 

다시 동유럽과 중앙 아시아로 진출한 사피엔스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사피엔스의 진출은 앞서 언급한 네안데르탈인의 멸종과 관계가 있는데요. 이부분에서 파르칭거와 하라리는 견해를 달리 합니다.파르칭거에 의하면 약 12만 5,000년 전 간빙기가 도래하고 유럽과 중앙아시아는 극도로 건조해져 전 유럽에서 나무가 사라지자 환경이 바뀌면 행동양식을 바꿔 적응하는 사피엔스와 달리 그런 능력이 없는 약 4만년전에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한다는 주장입니다.반면에 하라리는 7만 5,000년전 지중해 북부까지 진출했으나 네안데르탈인이 저항,기후,병균등으로 이주에 실패하고, 다시 7만년전 앞에 설명된 인지혁명을 바탕으로 재도전하여 유럽을 장악한다고 하지요.이런 협력과 유대 및 연대의 가능은 개인별로 힘센 네안데르탈인을 이기기에 충분합니다.소규모 씨족사회을 구성했던 네안데르탈인은 대규모 집단으로 연대한 사피엔스을 당해낼 수 없었겠지요.다음엔 후기 구석기 시대를 주도하고 인지혁명의 핵심인 호모사피엔스의 미술실력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5-6.호모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인류는어떻게역사가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

드디어 후기 구석기 시대인 호모사피엔스가 유럽과 동부유럽,그리고 일부는 시베리아로 등장합니다.이미 사냥 전문가로 성장했으며,주로 움막이나 동굴에서 가족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심미안이 생겨 동물 이빨이나 조개껍데기로 목걸이나 펜던트를 만들어 걸고 다녔지요.죽음을 의식하고 사자에 대한 연민으로 희생제물이나 심지어는 인신 공양을 한 흔적들까지 보입니다.

특히 그림이나 상징으로 생존과 번성에 필요한 정보를 주고 받고 의사소통을 했습니다.바로 인류 최초미술의 탄생 배경입니다.생존에 절대적 요소였던 동물들이 모델 역할을 했음은 당연했죠. 3만4,000년전부터 1만1,000여년 전까지 지금의 프랑스 남부 유적지를 중심으로 북 스페인,북 이탈리아 등지에서 다양한 동물과 19금의 음문,남근 등이 동굴 벽화나 암벽화에서 발견됩니다.모두 생물학적 번식기제를 인지 했으며 풍요와 번성을 기원한 듯 보입니다.특히 3만년전 쇼베 동굴의 음각화는 역동적이고 원근법 요소가 담긴 동물 스케치들과 '사자인간상'으로 유명한 독일 슈바벤 알프동굴의 '홀렌 슈타인 -슈타델' 등이 이 시기가 예술의 탄생기였음을 알려주지요.

이후 남부 프랑스 북부 스페인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 동굴벽화는 표현 수준과 주제의 다양성이 현대 미술 못지 않습니다.그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 비너스'이시기에 제작되어 시베리아를 거쳐 고조선 강역이었던 요하문명지인 극동까지 전파됩니다.라스코와 알타미라의 벽화는 점차 상징이 사라지고 대신 윤곽이 선명하며 원근법이 적용되고, 겹친부분으로 공간감을 표현한 전형적인 북방계 좌시안의 특징을 보여 줍니다.

미술의 탄생기! 후기 구석기 시대의 호모사피엔스는 무슨 이유로 그림을 그렸을까요?이 질문에 답을 구할 수만 있다면 오늘날 예술...특히 미술이 존중받아, 신성한 성소와 제단과 같은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작가들이 존경받는지에 대한 답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단순한 의문을 풀기 위해 지난 3년간 좌충우돌하며 닥치는대로 관련 자료를 들여다 봤습니다만, 아직 선명한 답은 구하지 못했네요.지금까지의 유력설은 동굴이 숭배의식의 장소였고 미술이 숭배와 제의식의 도구였다는 것입니다.뭔가 2% 부족한 느낌이지요.그래서 어설프지만 우기기 신공으로 저 나름대로 정리한 3만여년전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호모사피엔스가 그림을 그렸는지 라스코 벽화 하나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아래 그림은 들소 사냥중 불행한 사고를 당한 새머리 남자(완전히 새됐어...ㅠㅠ)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그림입니다.앞서 호모에렉투스는 무게 중심이 앞에 있는 창을 70m을 던져 사냥을 했지요.사피엔스는 이보다 진일보하여 투창 가속기를 활용, 시속1 00km의 속도로 창을 던지는 사냥 전문가였습니다.물론 집단으로 사냥감을 한 곳으로 몰아서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사냥을 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에서 사냥하다 다친 흔적이 발견된 것을 보더라도 사냥은 매우 위험한 일임은 틀림이 없습니다.내장이 흘러내린 것을 보니 들소는 이미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상처를 입어 화가 잔뜩난 들소에게 동료가 당한 모양입니다.이미 사피엔스는 죽음과 사후세계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죽은 동료의 영혼이 새가 되어 하늘나라로 날아간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 합니다.

어쩌면 일상 중의 하나였으며, 사냥중 발생 할 수도 있는 일을 왜 그렸는지에 주목합니다.사냥에 실패한 동료를 숭배했을 리는 없지요.다만 그 동료의 희생을 기리고 그의 평안한 사후세계를 기원하는 장제의식일 수 는 있겠습니다.하지만 저는 그것을 넘어선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 봅니다.바로 생존에 필요한 방어기제...즉 죽음에 대한 공포를 부족민들에게 전파하거나 후손들게 경각심을 심어줄 목적으로 그렸다는 것입니다.이 그림을 본 부족민들이나 후손들은 대를 이어 들소 사냥을 할때는 각별한 주의를 했을 겁니다.이렇듯 미술은 그 태동기부터 인류의 생존과 번성을 위해 숭고한 의무를 다했습니다.역사를 관통해서 현재까지도요.우리가 세상의 모든 작가님들을 존경하는 이유입니다. 

다음은 이렇게 사피엔스가 유럽과 중앙아시아지역에서 빙하기를 보내고 간빙기를 맞는 1만여년전 전후하여 동유럽의 흑해와 카스피해,남쪽으로 지금의 터기 북부인 아나톨리아 고원지대에서 난동을 부린 북방계 악동 스키타이에 대한 이야기를 인류 최초의 역사학자 그리스 헤로도토스의 이야기를 빌려 해보겠습니다.그들 중 일부가 동진하여 미리 도착해 있던 남방계와 혼혈하여 우리 조상이 되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