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樂 갤러리’ 아트컬럼입니다.

최후의 문명[3]-한국미술의 미래를 향한 좌충우돌의 여정!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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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역사 - 헤로도토스(BC484~425)

서양 최초의 역사가이자 타고난 이야기꾼인 헤로도토스...페르시아와 그리스 전쟁의 시기(그 유명한 마라톤 전투...)에 당시 그리스 문화권이던 소아시아에서 태어납니다.타고난 관찰력으로 직접 여행하며 당시 벌어졌던 페르시아 전쟁사를 실증하죠.헤로도토스가 위대한 역사가인 이유는 특정한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고 비교적 제 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역사를 기록했다는 점입니다.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전해 들은 것은 전해 들었다 말합니다.'나는 들은대로 전할 의무는 있지만, 그것을 다 믿을 의무는 없다'.행여 자신의 판단을 기록할 때에는 다른 주장과 분리하여 '나는 이렇게 판단한다'며 그것을 믿고 안믿고는 모두 독자의 판단에 맡깁니다.역사 학자로서 매우 바람직한 자세이지요. 이러니 키케로가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아버지라 부를만 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아케메데스 왕조 다리우스 1세는 그리스 침공전에 뒤쪽이 찜찜하여 동유럽 흑해 연안에 스키타이족을 먼저 눌러 놓으려고 합니다.참고로 다리우스 1세는 유명한스파르타의 몸짱왕 레오디나스가 나오는 '영화 300'의 못생긴 페르시아 왕인 크세르크세스1세의 아번님(무너) 되시겠습니다.ㅋ스키타이 정벌과정을 헤로도토스가 고스란히 기록하는데요.단순한 전쟁만이 아닌 지리와 인종..스키타이의 역사와 풍습까지 기록되어 있어 제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참 역사는 공시적으로 보면 더 재미납니다. 당시 중국은 춘추전국시대...공자(BC 551~479)께서 세상을 주유하시며 유세하던 시대쯤이고,우리로 치면 고조선 41대 단군 음차에서 44대 단군 구물의 시대가 되겠습니다.

헤로도토스는 스키타이족에 대해 제 4편 1~144장까지 매우 비중있게 다룹니다.우선 스키타이족이 주장하는 그들의 탄생 신화는 제우스와 흑해와 연결된 아조프 해신의 딸의 후손으로... 그리스인들은 헤라클라스와 반인반뱀녀의 후손으로...반면에 해로도로스는 역사학자 답게 북쪽의 맛사게타이족의 압박으로 남하한 부족으로 보지요.이에 대하여 해로도토스는 서사시인 아리스테아스가 언급한 북쪽 부족들에 대해 나열식으로 설명합니다.

이들이 모두 다 스키타이족는 아니지만 스키타이와 연관된 부족들을 살펴보면 그리스계 스키타이인 칼립파다이족, 판매용 곡물을 재배하는 농경 스키타이인 보뤼스테네스족, 씨도 안뿌리고 쟁기질도 안하는 동쪽 게르로스강 유목 스키타이, 특히 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튓사케타이족과 이위르카이족(이들은 뒤에 언급할 왕령 스키타이족에 게기다 쫒겨옴), 부족들의 분쟁을 조정하는 대머리족인 아르깁파이오이족, 남여가 평등하고 정의감에 불타는 잇세도네스족, 외눈박이 아리마 스포이족, 대기가 깃털(눈발)로 뒤덮인 곳에 사는 엘리스족, 교역전문인 휘페르보레이오이족 등등....

 

그중에 으뜸은 가장 고귀하고 규모가 큰 스키타이 부족으로 아조프해 지류인 돈강에 거주하는 왕령 스키타이족입니다.그들은 주위의 다른 부족들을 모두 노예로 여기며 황금으로 도배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저는 왕령 스키타이족이 스키타이 부족 연맹체의 수장이란 의미로 받아들입니다.믿거나 말거나 식인을 하는 안드로 파고이족과 대머리족도 있다고 하니....이상 약간 신빙성이 떨어지는 서사시인 아리스테아스의 흑해와 카스피해, 파미르 고원에 산개해 있던 북쪽 유목기마 민족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다음은 미스터 객관주의 해로도토스가 설명하는 북방 기마 민족인 스키타이 아홉 부족에 대해 정리하겠습니다.저는 이 아홉 부족이 한단고기의 삼성기 하편에 나오는 나반과 어만 사이의 아리사타(isata)의 후손인 환인국의 구환(九桓)의 무리로 굳게 믿고 싶습니다.ㅎㅎ

 

12.

역사 - 헤로도토스(BC484~425)
오늘은 어제에 이어 해로도토스의 스키타이 아홉부족을 소개할 시간이었지만, 마침 어제 어쩌면 제가 결말 부분에서 언급할 결론 부분에 대해 의미있는 기사가 나와 미리 살짝 간만 보고 가겠습니다.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부 교수가 대표로 있는 국내 게놈 해독기업 '클리노믹스'가 현대인과 고대인 게놈 273개 분석해 도출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우리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라 수만 년 동안 혼혈로 진화한 '다인족(ethnic group) 민족'이라는 연합뉴스 보도입니다.

약100만년 부터 호모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확산했지요.일단 근동,소아시아로 이동한 뒤 갈라져, 빙하기가 되면 기온이 따듯하고 해수면이 낮아진 해안로를 따라 동남아 순다랜드를 통해 한반도로 올라옵니다.간빙기에는 해수면이 높아진 해안로 대신 우랄과 알타이 산맥 사이의 초원길이 열려 동진해 도착하지요.그뒤를 이어 호모사피엔스도 기후변화에 따라 두경로를 따라 순차적으로 이동해 옵니다.

기사에 의하면 순다랜드를 거쳐 한반도에 먼저 도착한 아슐리안 석기를 쓰는 호모에렉투스를 선남방계(북아시아 지역) 인족으로 보는 것 같군요.학계에서는 이들을 고아시아인으로도 부릅니다. 이윽고 약 4천년 전 북쪽 초원길을 통해 청동기·철기인...(북방기마유목민,스키타이족,환웅의 배달국으로 추정)이 동북아시아에 도착했음에도 선남방계와 그뒤에 이동한 후남방계가 3:7 정도 비율로 혼혈되었다며 ,오직 '수만 년 동안 동북아 인구 펌프 역할을 했던 동남아시아 순다랜드에서 여러 차례 올라온 사람들과 그 자손들의 복잡한 혼혈'이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립니다.

이 결론은그동안 유력설이었던 '중앙아시아 쪽에서 동쪽으로 대륙을 건너온 북방계와 남쪽에서 온 중국계 남방계가 혼합해 한국인이 형성됐다'는 학설이 잘못됐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하는군요.제 의견은 이 결론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는 생각입니다.그들이 북방으로 왔던 남방으로 왔던 그들의 출발점은 소아시아였으며 같은 유전자를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서울 오는데 중부 고속도로로...아니면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한 것처럼요.그러니 유전자 게놈은 비슷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모두 주시안이 우시안인 남방계 채집인의 분기이기 때문이죠.

또 다른 하나는 절대적인 인구수입니다.비교적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생존환경의 채집형 남방계는 그들의 이동경로의 환경이 아무래도 척박하고 험난한 북방계 수렵형 유목 기마 민족의 환경보다 나아 절대적 인구수의 우위를 점합니다.동부 유럽과 중앙아시아 초원지대를 유린한 스키타이와 관련된 유적들을 살펴보면 주로 방어시설인 성과 해자를 쌓은 정착민...원시 도시인들은 그 인수가 월등히 많았았음에도 노마드인 스키타이의 정복과 약탈을 피할 수 없었지요.수렵과 약탈 유전자를 가진 북방 유목민족은 적은 수로 다수의 정착민인 남방계를 지배하는 지배층을 형성합니다.따라서 다수의 남방계가 포함된 표본조사는 당연히 남방계 우위의 결과를 내겠지요.

마지막으로 이번 연구는 158명의 현대인과 115개의 고대인 게놈(genome·유전체)을 분석했다고 하는데....그 고대인이 홀라세 이전인 BC1 만 1,000여년 이전의 표본이라면 이 연구 결과는 맞는 것입니다.하지만 그 이후라면 간빙기로 접어든 이시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북방계가 우랄과 알타이 산맥 사이...지금의 카자흐스탄의 터진 초원길로 동진해 왔기 때문에 결과는 달라 질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북방계 혼혈없이 다양한 남방계만의 혼혈 후손이라는 결론은 성급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이 문제는 더 다양한 시각에서 종합적으로 연구해서 판단할 문제인것 같습니다.이부분에 대해서는 결말 부분에 다른 유전자 조사 등을 인용하여 자세히 다뤄 보겠습니다.약속한대로 내일은 삼성기에서 언급한 구환의 무리로 추정되는 아홉 스키타이족들의 다양한 풍속과 특질을 해로도토스를 빌어 정리해보겠습니다.


13.역사 - 해로도토스 /스키타이족의 이해와 풍습

*청소년과 심장이 약한 분들은 마지막 부분을 읽지 말아주시고, 강한 사람들은 원본책을 읽어보세요.

스키타이의 아홉부족을 소개하기 이전에 그들 부족의 공통된 풍속을 잠시 살펴봅니다.당시 흑해와 가스피해 연안에 산개해 있던 초원지대의 여러 부족들은 스키타이족을 제외하고 지혜롭지 않은 무지한 부족들로 알려졌습니다.해로도토스는 스키타이족을 '우리가 아는 모든 부족을 능가하고 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그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그들이 따라 잡히고 싶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은 따라 잡지 못한다'라며 아나카르시스 즉 현인으로 기록했지요.이말은 당시 다리우스 1세가 페르시아 정예병 70만명과 배 600척을 동원하여 흑해에 진입 스키타이족을 정벌 할때 스키타이족의 전략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페르시아 대군을 눈앞에 둔 스키타이 부족 연합군은 하루 정도 걸리는 거리에 진을 치고 기다리다 페르시아군이 진군하면 다시 하루정도 거리의 지역으로 후퇴 하지요.물론 우물과 식량...목초지를 모두 초토화 시켜 페르시아군을 곧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후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에 침입한 외적들에게 사용한 청야전술(방어적 초토전술)의 시발점인것 같습니다.다리우스는 스키타이에 패하기 보다는 그들을 찾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 하지요.드디어 그들은 보이지도 않은 허상만 쫓아 다니다 지치게 되자 기마술로 인한 뛰어난 기동력과 초원지대의 지리에 익숙한 장점을 살려 적을 초원 깊숙한 곳으로 유인한 뒤 스키타이의 대반격이 시작됩니다.일종의 치고 빠지는 전술....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에 나오는 도망가면서 마상에서 상체를 180도 돌려 활을 쏘는 파르티안 사법도 구사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이리하여 저 유명한 다리우스 1세의 페르시아 대군은 속수무책..단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다가 결국 패배하여 되돌아 갑니다. 

해로도토스는 스키타이족이 도시도 없고 성벽도 없으며, 집을 수레에 싣고 말은 타고 활쏘기에 능한 불패의 부족으로 기록합니다.전형적인 북방 기마 민족의 전형이죠.특히 청동 가마솥을 말 등뒤에 싣고 다니며 취식을 했는데,자칭 흉노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신라의 상형 토기에 등장하는 동북이 바로 그것입니다.

 

특히 장작더미 모양의 신전을 세웠는데, 사각형의 단으로 3면은 가파르고,한 면만 오르게 되어 있는데 그너비가 3 스타디온(옛 단위라 얼마나 넓은지 잘모름)...높이는 그보다 작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마치 북만주의 요하문명(BC4,700년)또는 홍산 문화지에서 발견된 제단형 피라미드를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고구려 20대 장수왕릉은 그 축소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암튼 수레로 150대 분의 장작을 제단위에 쌓아 놓고 단검을 꽂아 놓은 다음 포로 100명당 한명씩 참수한 다음 죽어서도 복수 하지 말라고 오른팔을 잘라 단아래로 던졌다고 합니다.ㅠㅠ 이러한 풍속을 가진 스키타이의 조상 중 일부는 동진하여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아즈텍 문명의 태양의 신전에서도 인신공양이 그대로 재현됩니다.

전쟁은 맨 처음 죽인 적의 피를 마시고 수급을 왕께 바쳐야 전리품을 배분받을 수 있으며, 적의 머리가죽 벗겨 손수건처럼 사용했다고 하니 이런 풍습은 베링해협를 건너간 아메리카 인디언 풍속에서도 이어지지요.지금 기준으로 보면 무자비하고 잔인하기가 이를데 없습니다.문명화 이전의 원초적 폭력이 남무했을 당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좀 유난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이러니 주위의 모든 민족이 두려워 할수 밖에요. 특히 맹약을 신성시 했는데 항아리에 술을 붓고 단지하여 피을 섞은 다음 활,칼,도끼 등을 담그고 나눠마셨다고 합니다.칭기스칸 테무친과 쟈무카의 형제결의,유비 관우,장비(모두 북방기마민족)의 도원결의, 오늘날 동네 발좀 떠는 형님들의 결의가 바로 스키타이의 맹약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우겨봅니다.ㅎ

왕이 죽으면 미이라 상태로 만들어 예하 부족을 순회하다 게르로스 지역(오늘날 흑해 북안)에 매장을 하게 되는데,(스키타이 황금 유물이 무더기로 발굴되고 있음...)순장을 하고, 동도 아니고, 은도 아닌 오직 황금으로 도배를 한다음....경쟁적으로 거대한 봉분을 쌓아 올렸다고 합니다. 오늘날 고구려와 신라..백제에서 발견된 왕릉들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사후 1년뒤 차마 여기서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너무 잔인...ㅠㅠ) 순종 스키타이 청년들과 말을 미이라로 만들어 왕릉을 호위하게 하는 풍습이 있습니다.이러한 장례 제의식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조상들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싶지만 순장제도는 신라 지증왕때까지 남아 있었죠. 그 이전에도 순장제도가 등장하는데 가야 시절...김훈 선생의 '현의 노래'를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다음은 외부 문화에 배타적인 스키타이족의 습성과 원더우먼 탄생에 기여한 것으로 보이는 여인국 아마조네스와 스키타이 족과의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로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14.스키타이족
  삼성기(三聖記) 하편에는 '인류의 조상을 나반이라 한다.처음 아만과 만난 곳은 아이사타(ista,아사달)라 한다.꿈에 천신의 가르침을 받아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구환(九桓) 무리는 그의 후손이다.(~ 則九桓之族皆基後也).고대 중국의 많은 문헌에서 언급된 東夷,九夷,九黎(구려)등이 九桓과 같은 의미로 쓰여지고 있습니다.그렇다면 아이사타(ista), 즉 아사달...광명,아침의 땅이라는 의미가 들어간 오늘날 이스탄불,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심지어 아프가니스탄이 강역이 있는 흑해와 카스피해, 아랄해 그리고 텐산 산맥까지 흩어져 살았던 구환의 무리들이 누구인지 궁금해지네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는 제우스와 아조프해신의 딸 보뤼스테네스사이에서 스키타이족 탄생에 관한 신화를 잠시 언급했었지요.어느 민족이나 다 마찬가지로 그 시원은 신화로부터 시작합니다.이제 신화의 시대를 넘어 해로도토스가 기록한 스키타이 아홉부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타우로이족

난파선이나 바다에서 사로 잡은 헬라스인(그리스인)을 처녀신인 아르테미스 여신에게,인신공양을 합니다.적을 사로 잡으면 머리를 베어 굴뚝위에 메달아 놓습니다.그들은 노략질과 약탈한 전리품으로 먹고 산 모양입니다.

2)아카퇴르소이족

스키타이 여러 부족 중 가장 세련된 부족으로 대개 황금장신구로 멋을 내고 아내를 공유합니다.모두 가족이고 친족이라 시기하거나 미워하는 일 없이 모두 화목하게 살아갑니다.

3)네로우이족

뱀떼 출몰 때문에 나라를 버리고 잠시 이웃 부족인 부디노이족에 얹혀 삽니다.네로우이족은 모두 마법사인지 일념에 한번씩 늑대로 변한다고 하는데..해로도토스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물론 저도요..ㅎ

4)안드로파고이족

스키타이 부족 중 가장 야만적인 삶은 살며,정의나 법에 관한 개념도 없고 스키타이족과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유목민으로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스키타이 부족 중 유일하게 인육을 먹는다고 하네요.후덜덜...

5)멜랑클라이노이족

모두 검은 옷을 입고 다녀서 부족이름도 멜랑크라이...스키타이족 관습을 따릅니다.

6)부디노이족

인구수가 많은 대부족으로, 눈은 회청색,모발은 붉은 색으로 나무로 지은 도시에 삽니다.이들의 말의 절반은 그리스어이고 반은 스키타이 말을 썼습니다.하지만 부디노이족은 유목민들로 약간의 농사도 짓고 수달과 비버를 사냥하여 외투를 만들고 고환은 자궁병의 약제로 활용했습니다.

7)겔노스인

부디노이족 강역내에 살며, 나무로 지은 그리스식 신상과 제단 및 신전을 갖춘 그리스 성역이 있습니다.특이할 점은 이 부족은 3년에 한번씩 디오니소스 축제를 열고 모두 광란과 망아의 경지에 이른다고 하네요.헬라스계인 겔로노스인(그리스인들)이 이주했기 때문입니다.

8)사우로마타이족

헤라스인이 전설상 호전적인 여인족인 아마조네스족(스키타이인들은 아마조네스족을 오이오르 파타-남자를 죽이는-로 부름)과 싸우다 포로로 잡은 아마조네스족을 3척의 배에 싣고 출항했는데, 선상 반란이 일어나 배안의 그리스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스키타이 영내로 들어와 약탈을 하던 중 몇차례 교전 끝에 그들의 사체에서 그들이 남자가 아닌 여자인것을 말고 용감한 후손을 얻기 위해 스카타이 훈남들로 편성된 부대를 활용하는 미남계를 써서 결국 그들을 복속(그 과정이 얼레리 꼴레이 한 19금)시킵니다. 하지만 여인들에게 설득당한 스키타이족 남자들이 여인들을 따라 바다를 건너 세운 부족이 바로 사우로마타이족이죠.

9)왕령 스키타이족

마지막을 스키타이족의 의뜸인 왕령스키타이족은 가장 고귀하고 규모가 큰 스키타이 부족으로 아조프해 지류인 돈강에 거주하며,그들은 주위의 다른 부족들을 모두 노예로 여기며 황금으로 도배한 나라에 살았습니다.암튼 느슨한 부족 연맹체였던 왕령 스키타이부족은 다리우스에 맞서 항전을 하려고 부족 연맹체 회의를 소집했는데...멜랑클아이족,게로노스족,부디노이족,며느리국인 사우로마타이족 만 참전을 합니다.그래서 스키타이 연합군을 앞서 설명한 청야전략(방어적초토화전략)을 참전을 포기한 다른 부족의 땅으로 페르시아 대군을 유인하면서 시작합니다.쫌 비겁하긴 하지만 반 강제로 그들을 참전시키는 부수적인 효과를 거둡니다.결과는 스키타이 부족 연합군 승....

참! 외부문화에 대한 스키타이의 배타적인 면을 들여다 볼 수있는 에피소드는 오늘날 서양 예술의 탄생이라고 믿고 있는 디오니소스제전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내일 소개드리겠습니다.ㅎ

15.디오니소스신 제전과 스키타이 -해로도토스의역사

논리와 이성 그리고 합리적 사고의 상징인 아폴론의 로고스(Logos)! 출생부터 신들의 사랑과 축복 속에서 태어나 균형,조화,절제,지식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습니다.반면에 출생부터 고통스러웠던 디오니소스는 도취와 광란,격정과 광기 그리고 몰입,몰아,무아,망아의 심리와 감정 상태인 파토스 (Pathos)표방합니다.아폴론의 로고스는 학문,디오니소스의 파토스는 예술의 시발점으로 보는데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디오니소스 박코스는 바람둥이 신 제우스와 인간인 세멜리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는데,모친이 감전사하자 제우스의 넓적다리로 이식하여 출생했다고 하는 믿기 어려운 탄생 신화를 가지고 있죠.그래서인지 변신과 모방의 신이기도 하지만,인간에게는 포도 재배 기술을 전파하여 술을 발명한 酒神으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술을 마시면 이성을 잃고 헬렐레 해지는 도취와 격정, 황홀경에 빠집니다.이런 치명적인 유혹 때문에 디오니소스 밀교가 생기기도 했지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주로 풍요를 기원하며 파종을 하는 봄의 사육제나, 추수가 끝나는 가을의 추수 감사제와 같은 대중적 축제로 디오니소스 제전을 즐겼습니다.

디오이소스 제전는 주로 장엄한 신화적 주제와 영웅 설화의 비극적 내용을 주제로 한 비극과 익살스러운 토속적인 이야기가 담긴 희극을 7:3의 비율로 공연했지요.아마 생존과 번성을 위해서는 아름답고 행복한 아야기보다,공포스럽고 슬픈 비극적 서사가 더 도움이 된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부정적이고 슬픈 뉴스가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뉴스보다 훨씬 많은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그림도 예쁜그림보다 뭔가 우울하고,공포스럽고,괴기스러운 그림이 더 주목 받은 이치와 비슷합니다.암튼 수많은 미술사의 화가들이 이 디오니소스신과 제전을 작품으로 남깁니다.

이 디오니소스 박코스!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신,로마에서는 박카스신이라 불리는데. 해로도토스의 기록에 의하면 한방에 비오니소스 박코스신이라고 하는군요. 디오니소스신과 스키타이족과 관련하여 한꼭지의 슬픈 서사가 나옵니다.외국의 관습,특히 그리스의 관습을 받아들이기 몸시 꺼려 했는데 왕족인 아나카르시스가 그리스 축제를 재현했다는 이유로 아우인 스키타이왕 사울리오스에게 살해 당하기도 했습니다.

스키타이 왕 아리아페에테스는 이스트리아 출신인 그리스여인 결혼하여 아들인 스퀼레스를 낳습니다.어머니로부터 그리스 말과 글을 배우고 자란 스퀼레스가 왕위에 오르자 그리스식 생할과 풍습에 매료되어 군대를 이끌고 스리스인 부족이 사는 보뤼스테네스족 도시로 정기적으로 원행을 합니다. 군대는 교외에 주둔시키고 본인만 성안으로 시종과 호위도 없이 그리스인 의복으로 갈아입고 한달정도 잠행을 한 모양입니다.심지어 저택도 구입하고...그리스 여인과 결혼까지 하지요. 대 스키타이 왕을 이렇게 중독 시킨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그가 디오니소스 박코스신을 모시는 秘儀, 즉 밀교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해로도토스에 의하면 스키타이족들은 이 그리스인들의 박코스 축제를 혐오했다고 하네요.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신(술에 과도하게 취하면 개되는 것은 예나지금이나..ㅋㅋ) 과 그들이 버리는 광란의 축제...제정신을 가졌다면 당근 싫어 했겠지요.ㅎㅎ 드디어 드라마에서 처럼 밀고자가 등장합니다. '스키타이족이여! 그대들은 우리가 박코스 신을 숭배한다고 우리를 비웃고 있소.그런데 그대들의 왕도 그 신에게 미쳐있소.이말이 믿기 어려우면 내가 그 장면을 보여 주겠소' 나머지는 굳이 설명 안해도...ㅠㅠ 이윽고 본국으로 송환된 스퀼레스는 반란으로 새로 왕이 된 동생에게 쫓겨 트라케로 도망갑니다.스키타이족은 스퀼레스을 잡으려고 트라케와 전쟁까지 합니다. 결국 스퀼레스는 그동안 달고 다니던 머리와 슬픈 이별...ㅠㅠ 디오니소스가 뭐라고...그 깟 박카스(박카스가 왜 여기서 나와...ㅋㅋ)가 뭐라고...ㅠㅠ

암튼 이런 풍습을 지닌 스키타이족들의 조상이 동진하여 그 후손들이한반도에 세운 나라들인 고구려 동맹,동예의 무천,부여의 영고 등 추수 감사제에 외제 술신인 디오니소스 박코스 대신 순수 토종인 하늘신과 조상들을 향해 북을 치고 춤을 추며 제사를 모셨다는 슬픈 전설이 있었습니다.ㅎ 다음은 역사 이전의 시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구전되는 신화와 전설이 어떤 과정으로 탄생되는지....조지 프레이져 경의 명저 '황금가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