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에코 樂 갤러리’의 컬럼입니다.

15개의 포스트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19-03-07
예술의 탄생
예술의 탄생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예술은 우리에게 지적 고찰로 초대하는 바,그것은 예술을 다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다’독일의 관념론과 변증법으로 유명한 철학자 헤겔의 말입니다. 또한 아서 단토가 철학적 사유가 가능하다고 인정한 몇 안되는 예술가 중의 한사람인 미국의 개념 미술가 조셉 코수스도 ‘예술가의 유일한 역할은,예술자체의 본성을 탐구하는 것이다.’라고 언급합니다.도대체 예술이 무엇이길래 철학적으로 인식하고,그 본성을 탐구해야 할까요? 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헤메던 사유의 고산지대에서 제가 만난 모든 이정표들은 특정한 한곳을 가르키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의 아들로 태어난 삶과 죽음의 신 ‘디오니시스’입니다. 로마신화에서는 박카스로 불리운 ‘디오니시스’는 다른 신들처럼 여러 역할을 맡게 되는데, ‘술의 신,다산과 풍요의 신,생사를 경험한 부활의 신,도취과 쾌락을 추구하는 황홀경의 신’ 등 주로 집단적이고 연대의식과 관련된 제례행사를 담당했습니다. 디오니시스를 모시는 제례의식은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으며,흩어져 살았던 부족들이 정기적으로모여 생존과 번성에 관한 정보를 교류하고,유대와 연대감을 강화시키는 중요한 행사였지요.고대 원시인류는 이 축제를 통해 잠시동안 로고스 [이성,합리...]의 긴장 상태에서 벗어나 집단 파토스[황홀,광기,격정...]상태에 빠지곤 했습니다. 춤과 음악,시...그리고 역할극으로 구성된 제례의식을 진행하는 도중에 참가자는 모두 집단'파토스'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집단 황홀경은 오늘날 남미나 아프리카의 원시부족뿐만 아니라 붉은 악마의 월드컵 응원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관찰됩니다. 바로 그 제례의식의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들이 예술이라 부르는 여러 장르의 예술이 탄생하게 됩니다.연극,서사시,음악,무용,미술등이 그것입니다.특히 미술은 영웅적 행위나 업적,그리고 교훈등이 필요한 상황을 묘사하는데 유용했습니다.또한 디오니시스 제의식에서 맛본 강력한 황홀경에 대한 경험을 동굴벽등에 재현시켜 놓고 추억하는 과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천적으로 나약했던 고대 원시인류는 이런 집단 제의식을 통해 강한 연대감을 구축하고 소원을 축원하며 종족보존 및 생존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그런 이유로 이런 제례의식에 특별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일군의 사람들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겠습니다.그들은 일반인들보다 더 쉽고, 빠르고, 강렬하게 파토스 상태에 빠져들었으며, 그상황을 표현해 왔습니다. 그러지 못한 일반 사람들에게는 원형극장과 같은 공간을 통해 파토스의 간접경험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오늘날 우리는 그들과 같은 역할을 하는 특별한 사람들을 예술가라 부르며 존경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완전한 자유를 누렸던 인류는 필요에 의해 집단 및 공동 생활을 하면서부터 점점 스스로를 제약하고 규제하기 시작합니다.공동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말이지요.비록 현실은 제약와 규제속에 얽매여 살지만, 우리의 본능은 항상 자유를 향한 파토스의 욕망을 꿈꿉니다.하지만 예술가들은 일반인들과 달리 그 욕망을 현실에 구애됨이 없이 로고스와 파토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분출합니다.그 욕망이 연극이나 음악과 무용 또는 시나 소설같은 문학으로 표현되든지 아니면 조형의식이 반영된 미술로 표출되든지 그 욕망의 본질과 근원은 장르에 상관없이 동일하다는 의미입니다.바로 그 욕망의 근원과 본성이 표현된 예술은 이렇듯 인류의 번성과 생존의 반드시 필요한 원초적 불가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19-03-07
현대 미술의 이해
현대 미술의 이해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美의 시원에서 인류의 ‘생존과 번성’이라는 키워드가 진화 생물학적 측면에서 미의식의 생성 메카니즘의 근원임을 알아보았습니다.그리고 디오니시스 제전을 통해 인류의 ‘생존과 번성’의 노하우가 공유되는 과정에서 시나 음악,연극,회화 등의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탄생했다는 것도 살펴보았습니다.이렇듯 ‘생존과 번성’은 통시적 미술사의 신화,종교화,역사화,풍속화,정물화,인물화와 같은 작품속에서 공포와 슬픔, 때로는 풍요와 아름다움의 여러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역사가 발전함에 따라 각 시대의 각인된 ‘생존과 번성’의 유전적 기제들이 발현된 미의식이 각 시대의 특성이 반영된 작품으로 탄생하게 됩니다.수렵과 채집의 원시시대에서는 동굴벽화에서…신화나 종교가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시대에서는 신화나 종교화, 재단화에서…전쟁의 시대에는 영웅화나 역사화 등에서 우리는 쉽게 ‘생존과 번성’이라는 미의식을 찾을 수 있습니다.하지만 현대는 우리의 ‘생존과 번성’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과거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과거에는 전쟁과 기아가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기제였지만,현대에는 질병과 환경오염 등이 ‘생존과 번성’의 위협요인일 수도 있겠습니다. 데미안 허스트의 ‘약’시리즈는 현대에는 질병이 인류의 ‘생존과 번성’에 공포기제로 작용함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해석 됩니다. 하지만 모더니즘 이후 탈정형,비정형 심지어는 무정형의 현대미술은 ‘생존과 번성’이라는 미의식의 키워드로 해석이 가능 할까요?저는 가능하다고 봅니다.19~20세기에 인류는 두번의 세계대전과 혁명,자본주의와 부르주아의 한계,정신분석학의 대두, 고전물리학이 붕괴되고 상대성이론이 등장하는 등 급격한 사회의 변화는 유럽의 지성인들에게 큰 정신적 혼란을 줍니다.퇴폐와 허무주의가 득세하고,해체와 파편,그리고 전체성을 상실한 분업등이 기존의 전통적인 질서를 파괴합니다.현대 미술은 이 과정에서 손상되고 소외된 현대 사회의 부정적 각인으로 탄생한 것입니다.아방가르드 이론의 저자 페터 뷔르거는 현대 미술은 불구화된 형식을 통해 스스로 추해짐으로써 불구화된 현대 사회를 고발하고 저항해야 사회가 변화된다고 했습니다.바로 인류의 ‘생존과 번성’을 위해 추하고,이해하기 어려운 현대 미술이 그 숭고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19-03-07
美의 始原
美의 始原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공룡이 멸종하자 나약한 포유류에 불과했던 인류의 조상은 숲속 나무위에서 초원으로 내려와 직립보행을 하게 됩니다.생존과 종족 보존에 절대적인 위험 요소였던 파충류의 시대가 드디어 종말을 고하고 드넓은 사바나 초원에는 평화가 찾아듭니다. 그동안 자비를 몰랐던 포식자들을 피해 숨어지낸 숲속 나무위나 동굴 생활은 인류에게 선물아닌 선물을 남겨 주게 되는데, 바로 우리 DNA에 각인된 ‘원초적 본능’입니다.특히 나무위에서의 추락 공포는 지금도 우리가 높은 곳에 오르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고소공포증’을 갖게 된 이유입니다.영장류인 인간이 겪는 가장 극심한 고통은 자기 피붙이가 나무위에서 떨어져 포식자들에게 산채로 잡아 먹히는 것을 지켜보는 것입니다.그 엄청난 고통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현명한 우리 조상들은 큰 결단을 내리게 되는데,후손들에게 결코 잊지 못할 공포를 무의식에 심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까지 누구도 예외없이 느끼는’고소공포증’입니다.또한 우리가 지금까지 거주공간인 나무위까지 올라와 인류를 괴롭힌 파충류과 독충의 상징인 뱀과 거미를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단순하고 원초적인 방어기제인 공포가 즐겁고 행복한 상황보다 우리에게 더욱 민감하게 다가오는것은 위험을 회피하여 목숨을 보전하려는 생존과 종족 보존이 당시 인류의 최고 목표였기 때문입니다.하지만 현명한 우리 조상은 불안,공포,분노,슬픔,혐오의 방어적 기제만 유전자로 남긴 것이 아닙니다.그중에는 기쁨과 행복..그리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긍적적인 DNA도 있습니다. 초원으로 내려온 인류는 신체적으로 불리한 직립보행을 하게 되는데, 대신 손을 통한 도구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뇌용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따라서 인류 생존에 필요한 필수 영양소인 단백질과 탄수화물의 섭취를 위하여 수렵과 채집 활동을 하기에는 초원이 최적지이었습니다.단백질 보급원인 거대한 초식동물이 서식하고, 손쉽게 열매등을 채집할 수 있는 초원만한 환경은 없었을 것입니다.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인류의 조상들의 유골들을 초원에서 많이 발굴하게 됩니다. 위험한 시대가 바뀌자 수렵과 채집은 공포기제를 통한 위험 못지 않게 중요한 생존과 종족보존의 요소가 되었습니다.슬기로운 우리 조상들은 수집과 채집에 관련된 기제들 또한 DNA에 각인시켜 후손들에게 물려주는데,바로 초원과 같이 시야가 탁트인 풍광앞에 서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쾌감을 느낍니다.초원은 시야가 확보되어 위험요인을 사전에 파악하여 그 위험을 회피하고.생존에 필요한 식량 채취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또한 초원의 모든 꽃은 뒤에 열매가 열린다는 자연법칙에 따라 후손들이 꽃만 보면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특정 꽃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열매로 변한다는 것을 이보다 더 효율적으로 교육시키는 방법이 있을까요? 물론 이런 인류의 행동조차도 하나의 자연현상으로 보고 적응하여 진화한 꽃도 나타났습니다. 인류의 생존과 종족의 보존을 위해 형성되어,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된 채 내려온 원초적 본능인 미의식은 당대 또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사조와 양식으로 나타납니다.이렇게 발현된 작품들은 또하나의 문화DNA가 되어 같은 방식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유전될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미술작품을 생산하고,그 작가을 응원하며,그 결과물인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는 모든 미술 활동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후손들의 번성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고 숭고한 행위입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19-03-07
한민족의 祭天행사와 예술의 탄생
한민족의 祭天행사와 예술의 탄생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고대 희랍의 酒神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제전은 서양 예술의 탄생의 배경입니다. 1년에 4회, 1주일간 진행되는 이 제전은 그 숭배의 대상이 ‘술의 신’임을 비추어 볼 때, 부대 행사로 화려한 춤과 볼거리 등이 동반된 축제였음을 여러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제전에서 상연된 근친상간과 친족 살해 등의 반인륜적이고 충격적인 비극들은 역설적으로 악이나, 불행, 슬픔, 공포의 정서가 공동체의 ‘善’을 구축하는 초석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정서는 서양미술사에도 영향을 끼쳐, 보기에 아름답다는 보편적 의미의 미개념에 부합하지 않은 ‘공포와 슬픔’이라는 미의식의 논리적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파생되어 로마로 이어진 ‘바카날리아’라는 의례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석자들이 술을 마시고 집단 황홀경에 빠져 춤을 추는 ‘飮酒歌舞’는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 속의 祭天 행사에도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의하면 삼국시대 이전의 상고시대의 역사에는 하늘의 무한성, 절대성 그리고 초월성의 숭고함과 장엄함을 숭배하여 제사를 지내는 ‘祭天’행사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바로 고구려의 ‘東孟', 부여의 ‘迎鼓’, 동예의 ‘舞天’입니다. 동쪽의 사람들이 모여 [孟;비슷한 사람끼리 모임] 북을 맞아, 하늘을 향해 춤을 추는 [舞] ‘飮酒歌舞'의 의례였던 셈입니다. 비록 ‘디오니소스’같은 특정한 神 대신 숭배의 대상이 ‘하늘’이었지만 이런 제의례 행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시기에 여러 문화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서양 예술의 탄생이 ‘디오니소스’제전에서 발원되었듯이, 한민족 고유의 예술적 시원은 우리 역사가 보유하고 있는 ‘祭天’행사에서 찾아도 무방하겠습니다.비로소 우리도 뿌리 깊은 예술의 시원지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제전이나 제천행사에서 파생된 예술 중 시간예술에 속하는 연극이나, 노래 그리고 춤은 원전 상태 그대로 기록 보존이 어렵기 때문에 구전에 의지하거나, 시각예술인 회화를 통하여 그나마 윤곽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술은 여타 예술의 전통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행히도 현명한 우리 조상들은 각종 고분과 벽화에 그 흔적들을 남겨, 후손들의 고유한 美意識을 형성하고,전통 예술을 전승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서양의 ‘디오니소스 제전’이나 우리의 ‘제천행사’에서의 ‘飮酒歌舞’는 집단 최면인 황홀경과 광기, 그리고 격정의 상태를 유발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신이 나타난 神明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무아지경, 몰아지경의 興과 樂의 상태인 것이죠. 신명 나게 놀거나 일하자는 말에서 유추하건대, 신명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인 셈입니다. 즉 흥겹고 즐겁게 몰입해서 신바람나게 놀거나 일하면 비록 그일이 힘든 육체적 노동일지라도 행복해집니다. 즐겁고 행복한 樂의 정신적 상태에서, 어깨춤이라도 덩실거릴 육체적 興에 취하는 ‘飮酒歌舞’의 제천행사에서 파생된 樂&興의 미의식으로 보면 그동안 일본의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존했던‘恨의 美’라는 한국인의 미의식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금방 알 수 있겠습니다. 작가는 樂&興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고,관객은 그런 파장에 감염되어 작품을 감상하면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19-03-07
신명[神明]나는 한판! 한국인의 美意識
신명[神明]나는 한판! 한국인의 美意識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한 공동체의 미의식은 억겁의 세월 속에 DNA에 각인되어 후손들에게 전승됩니다. 기마민족으로 유목을 하며 동진하던 우리민족은 베링해를 건너지 않고 따뜻한 곳을 찾아 남하하다, 삼면인 바다에 갖혀 반도에 정주합니다.유목의 궁극적 목적이 유랑이 아닌 정주인 만큼, 드디어 우리 민족은 반복적이고 체계적인 문화와 사회지능을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단기적으로는 밈[MEME]인 교육과 학습을 통해,장기적 원초적이고 무의식의 직감의 영역인 진[GENE]으로 유전적인 전달이 가능하게 된 것이죠.바로 이과정에서 한국인 고유의 ‘미의식’이 탄생합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인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국인의 미의식을 ‘恨의 美’ ‘白의 美’로 규정합니다.우리 역사와 당시 식민지 상황이 맞물려서 마치 정설처럼 받아들여져 지금까지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아마 930여차례의 외세의 침략과 당시 하얀색의 무명옷을 입고 있던 것을 보고 추론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하지만 이것은 단편적이고 편협한 시각에서 나온 오류입니다. 정주하게 된 우리민족은 농경생활로 의식주가 해결되자 우리만의 고유의 미의식을 가지게 됩니다.바로 ‘興과 色의 미의식’입니다. 농경과 정주민족의 특성상 공동체의 ‘유대와 연대’의식이 반영된 농악,강강수월래,줄다리기와 같은 다양한 민속놀이가 우리는 ‘恨의 민족’이 아닌 ‘興의 민족’임을 증명합니다.또한 화려한 신라의 유물과 고구려 벽화,그리고 방방곡곡에 산재되어 있는 이름없는 정자의 단청만 보더라도 우리는 ‘白의 민족’이 아닌 ‘色의 민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지구촌은 한류[Korean Syndrome]에 빠져 있습니다.K-POP은 물론이고 드라마,영화 심지어 패션과 화장품까지 온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습니다.그동안 숨겨져 있었던 한국인 고유의 미의식인 ‘興과 色의 미의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보는것이 무리일까요? 유대와 연대 의식이 반영된 방탄소년단의 화려한 칼군무가 집단 파토스[Pathos]상태인 ‘興’의 발현이라고 보는 것이 잘못된 해석일까요?이제 우리는 ‘恨많은 白의 美’이라는 패배적이고 퇴보적인 미의식을 버릴때가 됐습니다. ‘興많은 色의 美’라는 새로운 미의식으로 세계를 향해 신명[神明]나는 한판을 벌일 때가 된 것이죠.다음은 바로 우리 미술인의 차례입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19-03-07
미술시장 대중화
미술시장 대중화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암스테르담 시장에서는 수준 높은 미술품이 저렴하게 거래되고 있으며, 구매자 대부분은 소시민과 농부다. 일부 농부는 2,000~3,000파운드의 그림을 소장하다, 다시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되팔기도 한다’ 이 꿈같은 이야기는 1641년 영국의 패트런이자 컬렉터인 존 에벌린의 회고록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도대체 17세기 네덜란드에 무슨 일이 있어났던 것일까요? 이보다 앞선 1602년 인류의 경제와 자본사에 길이 남을 회사가 네덜란드에 설립됩니다. 바로 동인도 회사입니다. 당시 유럽은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이 투자한 콜럼버스가 신대륙 발견함으로써 큰 수익을 얻게 되자, 식민지 투자 붐이 대유행을 합니다. 이때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는 소수의 자본가나 왕가에게서 투자 받는 다른 나라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입니다. 즉 불특정 다수의 소시민에게 정복 무역자금을 조달 받아 선박 건조, 용병 고용으로 대규모 선단을 구성한 다음 무역에 투자하는 새로운 금융 시스템을 선보이게 되죠. 이후 동인도 회사는 인도네시아를 정복하여 200여 년간 통치를 하여 투자자인 소시민들에게 막대한 수익을 되돌려 줍니다. 존 에벌린이 본 그림이 자유롭게 거래되고, 농부까지 포함한 대중이 참여한 미술시장 풍경은 바로 이런 배경 아래 형성된 것입니다. 심지어 일부 작품들은 외국에 수출까지 하게 되는 호황기를 맞게 됩니다. 과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처럼 미술품의 대중화가 일어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여러 지엽적인 회의론을 뒤로하고, 당시 네덜란드 상황과 견주어 몇 가지 낙관적인 전망을 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무역부분입니다. 산업통상부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2018년 수출액 6,000억을 넘겨, 세계 6위의 수출 강국입니다. 무역규모 또한 1조 1,00억 달러를 기록하여 세계 9위의 무역 강국이기도 합니다. 무역으로 인한 경제 호황기에 미술시장의 대중화가 가능했던 네덜란드와 매우 유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물론 식민지 침탈 무역이 아닌 평화로운 방법으로말이죠.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로는 유일하게 그런 기록을 달성했다고 하니 더욱 경이롭습니다. 식민지 정복 무역에 본인들 대신 용병을 고용해 보낸 네덜란드 소시민들은 자기들이 분산 투자한 회사나 배에 대한 정보의 수집 및 분석, 그리고 해석이 곧바로 수익과 직결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당연히 각종 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동안 왕족과 귀족, 성직자에 독점되었던 지식과 정보에 눈을 뜬 셈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하워드 가드너가 말한 ‘Well-educated people’으로 17세기 네덜란드인들 조차 상상할 수 없는 지식과 정보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또한 무역 호황으로 인한 자본의 과잉 상태였던 17세기 네덜란드처럼 1,000조가 넘는 시중 부동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림 소장이 소시민부터 부유한 자본가까지 인정받는 투자방식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루빨리 패배적인 회의론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2019년 새해에는 꿈에 그리던 미술시장의 대중화에 대한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전망을 조심스럽게 기대해 봅니다.
글쓴이 : 큐레이터 김기림
2019-03-07
스트레스 없는 신나는 작업세계 ‘강덕현 작가’
스트레스 없는 신나는 작업세계 ‘강덕현 작가’큐레이터 김기림 필자의 어릴 적 일요일 아침은 KBS에서 방영하던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기 위해 리모컨을 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만화와 보내던 어린 시절을 끝내고 교복을 입던 시절은 책방에서 만화책을 빌려와 따듯한 침대 속에서 만화 세계에 빠져드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실 이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추억인 듯하다. 우리는 이렇게 애니메이션, 만화, 웹툰과 같이 이미지와 텍스트가 어우러진 문화에 익숙하다. 그리고 분명 우리들 중 일부는 이 문화에 열광하며 몰두하고 집착하고 있다. 오늘날의 현대미술에서도 이 익숙한 문화, 특히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예술’과 ‘대중’ 사이의 연결고리로 사용하고 있다. 마르셀 뒤샹의 <샘>을 기점으로 발생한 개념미술과 한국 미술시장에서 한껏 주가를 높이고 있는 추상미술 또한 대중들에게 어렵고 무겁고 복잡한 모습으로 비춰지며 대중과의 거리를 멀어지게 했다면, 최근의 이런 문화는 전통적인 회화가 지닌 어려운 부분을 가볍고 쉽고 익숙한 문화로 융화해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한국의 많은 현대미술 작가들 중 젊은 작가인 ‘강덕현’은 만화의 차용을 통해 길거리 전시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강덕현 작가는 그의 작업에 <카인 스트레스 코믹>(Kein Stress Comic)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다. 이는 독일어로 ‘스트레스 없는 만화’라는 의미인데, 만화의 이미지를 가지고 작업을 하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재미있고 신나는 작업이라는 젊은 작가의 미술세계를 한 번에 보여주는 제목이다. 강덕현 작가는 부산에서 2014년부터 다섯 차례 작품 전시를 했는데, 장소는 모두 대중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길거리나 다리 밑이다.
글쓴이 : 큐레이터 김기림
2019-03-07
답답한 사회적 현상을 은유와 풍자로 표현하는 ‘채정완 작가’
답답한 사회적 현상을 은유와 풍자로 표현하는 ‘채정완 작가’큐레이터 김기림 1960년대 초 뉴욕에서는 당시 미술의 주류를이루는 추상 표현주의를 밀어내고 새로운 미술의 한 장르가 중심으로 우뚝 섰다. 바로 팝 아트다. 팝 아트는 영국에서는 195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1950년대 말 등장한 예술 사조로 1960년대에 절정을 이뤘다. 1950년대 미국과 영국은 대량 생산과소비가 절정에 다다르고, TV나 잡지, 광고에 등장하는 이미지에도출된 대중에게 익숙한 대중매체 이미지를 작품화했다. 팝 아트는 기존의 미술형식을 벗어난 새로운 것을추구했으며, 우리의 눈을 통해 보는 실제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이미지를 재가공해 인공적인 제2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작가들은 대중문화를 비판하거나 대중문화에도전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기보다는 대중문화를 작품의 소재로 활용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내포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팝 아티스트 작가는앤디 워홀, 장 미쉘 바스키아, 키스 해링이다. 우리는 이들을 팝 아티스트의 3대 거장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3대 팝 아티스트 말고도 미국 팝 아트 운동의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제임스 로젠퀴스트라는 작가가 있다. 그는1950년대 후반에 생계를 위해 광고판 그림을 그렸고, 그 경험을 통해 팝 아트 작가로성장했다. 작가는 광고라는 대중 매체를 작품의 소재로 이용하면서 작품을 객관화하는데, 이것은 소비사회를 역이용하는 팝 아트의 대표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그의작품은 미국의 소비 지향적인 문화와 이를 부추기는 상업 매체 그리고 대중의 물질적인 욕구를 정확하게 읽어냈다. 그리고이를 비판하는 이미지를 담은 작품으로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했다.<그들의소통_145.5㎝ × 112.5㎝ (80호)_ 캔버스에 아크릴_2016> 채정완 작가는 제임스 로젠퀴스트처럼한국의 사회적 현상을 젊은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재구성해 이미지화해서 대중에게 메시지를던지고 있다. 특히 채정완 작가의 작품은 애니메이션적인 이미지를 차용해, 단순화된 이미지와 색상으로 대중문화의 일환처럼 보이면서도 대중에게 팝 아티스트의 연장선으로, 현대의 팝 아티스트의 전형으로 인식된다.<안락한 유모차_116.5㎝ × 80.0㎝ (50호)_ 캔버스에 아크릴_2016>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이 느끼는불만과 답답함을 젊은 작가 채정완이 대표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작가라는 직업을 통해서 작품 속에직접적이지 않은 한 번 더 가공된 이미지로 사회 현상에 대한 생각을 은유와 함축적인 풍자로 표출하며, 관람객과공감을 시도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예술의 새로운 방향이 아닐까?출 처 :http://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44901작성일 : 2018.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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