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에코 樂 갤러리’의 컬럼입니다.

18개의 포스트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19-07-10
[그리스 보물전에서 우리의 미래를 읽다]
[그리스 보물전에서 우리의 미래를 읽다]조용진교수님의 '한국인의 몸,얼굴,뇌,문화'의 내용을 중심으로...아주 오랜 옛날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가 시작되자 나일강이 범람하고 해수면이 상승하여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던 육로가 사라집니다.다행히 아프리카 중부 사바나 초원을 출발한 인류의 조상중에 좌시야(우뇌형) 유전자를 가진 수렵인들은 이집트까지 올라와 이미 열렸던 육로를 통해 좌측 방향(좌측것이 커보여 좌측으로 이동...)인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남유럽의 해안선을 가로 질러 이베리안 반도까지 진출 한 뒤였습니다. 마침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수렵형 유전자를 지닌 유럽인들의 조상의 이동로를 일시적으로 끊어 놓습니다.그러자 발칸 반도에는 그 기간동안 수렵형 유전자의 공백기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미 수천년전에 먼저 아프리카를 출발,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북유럽까지 북상했던 일군의 무리들이 북극에 가로막혀 거대한 설벽(우랄산맥,알타이산맥,히말라야산맥)을 끼고 다시 남하하다,그중 일부가 발칸반도에 들어오게 됩니다.나머지는 순차적으로 중동, 인도로 남하하거나, 간빙기가 시작되자 열린 우랄과 알타이 산맥사이의 골짜기를 지나 동진하게 되지요.같은 시기 우시야/좌뇌형 채집 유전자 형질을 가진 인류의 조상들은 이집트까지 같이 올라오다가 우측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이들은 중동,인도을 거쳐 이윽고 오늘날 인도네시아/필리핀 열도에 도착하게 되지요.이후 이들이 해안선을 타고 한반도까지 올라와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를 연 우리 민족의 채집형 남방계의 시조가 되겠습니다.일부는 빙하기때 낮아진 해수면 때문에 훨신 가까워진 호주로 이동합니다.(디즈니 만화영화 모아나의 시대 배경) 이부분은 나중에 이야기 할 별도의 시간이 있을 겁니다.이번에 그리스 보물이 주인공이니 다시 그리스로 가보겠습니다.당시 그리스가 있는 발칸반도에는 우시야/좌뇌형인 채집형 선주민들인 남방계가 이미 들어와 정착하고 있었습니다.이들과 북유럽에서 남하한 수렵형의 북유럽계가 혼혈된 것입니다.아직 분화되기 전인 이집트에 이어 인류 역사상 두번째의 혼혈이 발생한 것입니다.이 혼혈이 무슨 대수냐고 생각하겠지만 인류문명의 역사의 이면엔 반드시 이 혼혈의 역사가 있었습니다.수렵형/채집형 분화 직전인 이집트 문명이 그랬고,첫번째 혼혈인 그리스 문명,두번째인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후 인도의 인더스 문명,중국의 황하 문명,그리고 발해만의 요하문명 등이 그렇습니다.동양의 문명은 1만5천년전 간빙기의 시작으로 우랄과 알타이 사이의 계곡이 열리자 스키타이와 훈족으로 통칭되는 북유럽 북방계의 동진으로 혼혈이 이루워진것입니다.이렇듯 유전자가 상극인 인류가 만나 혼혈되면 인류의 역사와 문화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됩니다.수렵형 유전자를 지닌 북방계 유럽인들은 사냥에 특화된 시야인 전체시를 갖게 됩니다.먼곳을 넓게 봐야하고 움직임에 민감하기 때문에 시청 감각에 뛰어나,투시원근법,명암법의 표현에 특출난 능력을 보유합니다.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 가능하지요. 오늘날 남유럽의 모든 동굴에서 발견되는 구석기 시대의 벽화를 상기하시면 쉽게 이해가 되겠습니다.반면에 열대 우림속에서 채집생활을 하던 남방계는 시각과 청각보다는 후각과 촉각, 그리고 미각이 절대적인 후미촉 감각을 보유하게 됩니다.열대우림으로 시야가 제한되니 보이는 것보다는 상상하는 개념이 발달하게 되고, 디테일에 매우 강한 부분시의 유전적 형질을 갖게 되지요.자 이제 상상해 보세요. 이 두 형질이 섞이니 어찌 문명이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여러분은 북방계와 남방계,전체시와 부분시,수렵형과 채집형,우뇌와 좌뇌,현실과 개념...의 유전자 융합의 결과가 어떤 보물들을 만들어 냈는지 그리스 보물들을 통해 확인해 보세요.그리고 이제 우리는 세형 청동검과 방울,그리고 거울을 가지고 동진한 스키타이 북방계와 시베리아 타이가 숲에서 빙하기를 보냈으며, 하체가 유난히 강한 퉁구스 북방계와 오밀조밀 디테일에 강한 채집형 남방계가 반도에 갇혀 5천년 동안 혼혈로 숙성된 우리 한민족의 디지털 문명급 문화 저력을 즐기시기만 하면 됩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19-05-10
이보윤 개인전/행복이 사는집
[이보윤개인전/행복이 사는집] 저명한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교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을 모두 잊은 채로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나는 상태를 몰입[Flow]이라고 했는데, 이는 불교에서는 일체의 상념을 버리고 오직 한가지에만 집중하는 삼매[三昧], 정신이 한곳에 집중되어 스스로의 존재마저 망각한 무아지경[無我之境]과 상통합니다.특히 모든 예술가들의 경이로운 작품의 탄생 배경에는 무념무상 상태에서의 이런 탈아의 과정이 있습니다. 니체는 그의 명저<비극의 탄생>에서 이런 몰아[沒我],즉 디오니소스의 광기에 대해 언급합니다. 자신을 잊고, 또 다른 나인 무의식 상태에서 행하는 예술적 행위는 쾌감을 주며 작가 스스로 미치도록 행복한 자신을 만나는 순간입니다.수많은 예술가들은 왜 밤을 지새우며 특정 주제나 작업에 몰두하는지 그 철학적 배경이기도 하죠.낭만주의 철학자 셸링은 예술작품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의식적 창조물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무의식이 그 창조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즉 작가는 자신의 무의식과의 접신[接神]을 통하지는 않고서 작품을 완성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작가 이보윤은 습관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런 디오시소스적 몰입상태에 빠져듭니다.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새 작업하다보면 어느새 새벽이 되는 경험! 자기 자신을 잊고 내 안의 또다른 나를 불러내 작업을 하지요. 그동안 몸은 혹사당하고 괴롭지만, 뇌 만큼은 시공간개념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의 쾌감을 얻는 행복한 상태...바로 니체가 말하는 '디오이소스적 광기’이자 칙센트 미하이교수의 몰입이며,불교에서의 삼매가 아닌가 합니다. 집과 꽃은 작가 이보윤이 삼매의 상태에서 채집한 ‘채집’한 행복의 상징물입니다.그가 수만채의 집을 반복적으로, 집요하게 그리며 터득한 진리는 바로 집이 삶과 가족의 매개체를 넘어서 행복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작가는 자신의 삶이 있는 '집'을 인과의 법칙으로 자연스럽게 그릴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합니다.우리는 또한 작가의 작품내에서 꽃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는 왜 꽃을 왜 아름답다고 느낄까요? 특히 꽃을 주관하는 여신인 '플로라'는 미술사에서 미술과 가장 관계가 깊은 오브제였습니다.인간과 꽃의 관계는 서로 생존과 번식을 위한 공생이라는 오묘한 자연의 섭리입니다.인류는 아름다운 꽃 뒤에는 반드시 생존과 관련있는 열매가 열린다는 것을 알았으며,그 열매는 인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주식이었습니다.꽃 또한 이런 인간의 습성을 역이용 했겠지요.인류에게 꽃은 단숨한 아름다움을 넘어선 생존본능으로 인식하게 되는 대상이었으며 그 인식코드가 바로 우리가 꽃을 보면 느끼는 미[美]인 것입니다.오랜시간 꽃의 미[美]에 치명적으로 각인된 인간의 뇌는 비록 그 열매가 쓸모가 없더라도 美 자체의 가치를 인식하게 됩니다.드디어 관상용 꽃 조차도 인류와 동거하게 되는 순간이죠. 작가 이보윤은꽃에 둘러쌓인 집을 달콤하고 행복한 집이라고 정의합니다. 작가의 언급대로 우리는 무수한 '삶'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그 모든 삶이 '행복한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공동체적 의지가 담겨있지요.비록 작가의 그림을 접하는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간절한 행복이 온전히 다 내것이라고 느낄 때 찾아오는 ‘마음의 평온’함을 이야기 합니다.행복의 또 하나의 고요한 모습인 ‘평온’은 한민족의 고유의 미의식입니다.고요함 속의 평온 보다는 일상의 분주함 속에 평온이 더 값진 법입니다.작가는 바로 번잡하고 분주한 일상 속에서의 평온을 작품에 담았습니다.작가 스스로 미치도록 행복하고 신명난 상태의 몰아에서 시작된 작업은 한민족 고유의 미의식인 평온미로 발현되며, 이윽고 작품은 작가의 공동체 의지가 반영되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합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19-05-10
소리를 넘어선 또 하나의 공명(共鳴)
[소리를 넘어선 또 하나의 공명(共鳴)]만물을 무한소로 쪼개면 원자가 나오고, 그 원자는 다시 원자핵과 중성자,그리고 그 주위를 구름처럼 떠도는 음전하로 나눠집니다.그 중 원자속에 존재하는 핵의 크기는 원자 전체 크기의 10만분의 1정도 매우 작고, 그 나머지 공간은 전자구름이 채우고 있어 사실상 우리가 알고 있는 원자는 빈공간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최근에 진전된 과학 기술의 힘으로 원자핵내의 양성자와 중성자는 그보다 훨씬 작은 쿼크와 힉스와 같은 미립자 알갱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죠. 양자 물리학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원’은 이중슬릿 실험을 통해 물성을 가진 물체뿐만 아니라, 뇌파와 빛, 그리고 소리같은 전자기파도 무한소인 미립자 알갱이들로 나뉘며,그 미립자들이 물결모양의 파동을 통해 다른 원자에 자국을 남긴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자국을 남긴다는 의미는 바로 상대편에서 보낸 파동이 내 몸안의 빈공간에서 자신의 파동과 뒤엉켜 일으키는 공명을 말합니다.때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몰려오는 이런 파동 때문에 우리는 예술 작품을 통해 진한 감동을 느끼는 것입니다.빅뱅 이후 형성된 우주화구가 점차 식어가자,이때 방출된 전자기파는 주파수가 높은 감마선,엑스선,자외선, 그리고 우리의 눈으로 관찰 가능한 가시광선, 적외선, 전파 순으로 지구에 도달합니다. 그런 전자기파 중에 빛은 진공상태에서도 파동으로 전파되지만, 오직 소리만은 공기의 밀도에 따라 생성되는 파동으로 인간의 오관 중 청각과 촉각을 통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10의 28승개의 원자속 빈공간에서 공명을 합니다.그렇다면 우리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내 빈공간에서의 공명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시학’에서 우리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는 공포,슬픔,연민,긴장,상처 같은 부정적 기제들을 격한 감정 유발, 즉 공명을 함으로써 몸밖으로 배설하는 카타르시스[Katharsis]대해 이야기 합니다.일종의 정신적 승화 및 정화 작용으로 우리는 이 과정이 끝나면 묘한 쾌감과 개운함을 느끼거나, 슬픔이 사라지는 효과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술가는 파토스[Pathos]상태에서 우리 몸안의 빈공간을 관통하는 전자기파에 자신의 예술적 감성을 담아 공명으로 증폭시킴으로서, 스스로를 정화하고 이때 발생되는 쾌감으로 보상받습니다.그 증폭된 파동을 받는 관객 또한 같은 경험을 하게 되지요. 음의 진동과 파장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함께 공명시켜 응어리진 恨과 슬픔이 풀어진 신명난 상태로 가야 비로소 마음이 정화되는 것입니다.그렇다면 누구나 그 파동을 받아 공명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예술가가 파동을 증폭 시켜 방출할 때 관객 또한 그 파동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예술가와 같은 수준의 대역에 주파수를 연 파토스 상태여야 오롯이 그 감동의 파동을 받아 공명할 수 있게 됩니다.영국의 정신 분석학자 M.클라인은 이성적인 로고스[Logos]에서 무의식 상태에 접어들기 힘든 어린이를 대상으로 ‘유희 요법’이라는 처방으로 치료를 했습니다.부정적인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 대한 의도적인 저항 때문에 어린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죠. 즉 몰입 즉 파토스 상태에 이르게 한 뒤 치료한 것입니다. 이 ‘유희요법’은 비단 어린이만 해당 되는 것은 아닙니다.어른들도 축구나 야구를 응원하거나, 영화 또는 공연을 보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러 전시장에 들리는 등 약간의 사전 준비와 환경만 조성되면 누구나 쉽게 공명이 가능한 파토스 상태에 이를 수 있지요.인간의 뇌는 최초 파충류때 형성된 밤톨만한 뇌간으로부터 외부로 진화를 하게 됩니다.뇌간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공격과 방어행위 및 짝짓기 그리고 심장 박동과 호흡활동 같은 생존과 번성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담당합니다.이후 포유류로 진화하게 된 인간의 뇌는 뇌간을 감싸며, 감정과 정서를 담당하는 변연계로 커집니다. 이윽고 영장류로 진화한 뒤에 비로소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그리고 영감이나 직관을 발현 할 수 있는 대뇌 피질을 갖게 되지요.우리의 대뇌 피질은 보다 많은 정보를 저장하기 위하여 마치 허파 꽈리처럼 진화합니다.이는 제한된 뇌공간내에서 보다 넓은 표면을 갖기 위한 신의 한 수인 셈이죠. 뇌용량이 스스로 확장되는 방향으로 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존과 번성에 필요한 정보가 급증하는 바람에 더 이상 자체 저장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양이 증가하자, 인류의 조상들은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바로 정보를 육체 밖으로 저장하는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마치 오늘날 블록체인[Block Chain]처럼 자기가 가진 소중한 정보를 타인의 뇌에 복사해서 붙여 넣어 공유하는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인류의 생존과 번성에 반드시 필요했던 집단 연대 및 유대 관계의 시작입니다.바로 이때 모여 집단적으로 필요했던 정보를 공유했던 방식이 오늘날 예술의 장르인 연극,음유시,회화,춤,음악의 탄생 배경입니다.이런 집단 행사는 서양의 ‘디오니소스 제전’으로 발전되고, 우리 한민족은 고구려의 동맹,동예의 무천,부여의 영고[迎鼓]같은 상고 시대의 제천행사로 나타납니다.특히 부여의 영고[迎鼓]는 다른 제천행사가 모두 10월에 열리는 것에 비하여 12월에 열리는데, 이는 농경을 을 업으로 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수렵과 유목이 주업인 까닭입니다.만주 벌판을 내달렸던 수렵 기마민족의 기상을 붇돋는데에는 파장이 길며 낮게 깔려, 지평선 너머까지 멀리 공명시키기에 혁고[革鼓]만한 것을 없었겠지요.둔탁하게 낮게 울리는 북소리는 그 파장이 길어 듣는 사람 모두의 가슴을 공명시켜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킵니다.단시간에 집단 파토스 상태를 유발하기에는 북소리가 최고의 방법이었을 겁니다.하물며 전쟁터도 아닌 생존과 번성의 정보가 공유되는 연대와 축제의 마당인 제천행사에서의 북소리는 그 행사의 이름을 영고[迎鼓]라 했을 정도로 상징적이었습니다.잘 아시다시피 이미 소리 하나만으로 광저우,카타르,벤쿠버 올림픽 개폐회식에서 한국의 소리를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알린 작가 최소리는 이미 십수년을 북과 접화 된 상태에서 북소리와 공명하며 살아왔습니다. 살아 숨쉬는 시간 절반이 파토스 상태, 즉 광기와 도취와 삼매의 신명난 삶이었죠.작가 스스로도 내가 나비인지..나비가 나인지 모를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상태에서 크고 작은 북을 쳐 세계를 공명시켰습니다.그때마다 대중은 못 보고 그의 눈에만 보이는 기의 흐름, 즉 북소리의 파장이 경기장을 가득 메운 수만명의 사람들을 휘어감아 그들의 세포속 빈공간을 공명시킬 때, 작가 최소리는 문득 그의 눈에만 보이는 그 소리의 파장을 영구히 시각화하기로 결심을 합니다.공연과 같은 시간 예술은 신명에 이르는 그 효과가 즉흥적이지만 지속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이미 소리의 공명을 통하여 세계를 정화시킨 선험적 메카니즘을 가진 작가 최소리가 시각예술인 회화의 영역에서 추구하는 또 하나의 공명을 과연 무엇일까요?어린시절부터 소리에 미쳐 정규 교육과정에서 이탈한 상태로 자연 속에 파묻혀 모든 물성을 가진 물체를 두드리며 그것들이 내는 소리 파장에 중독되고, 득음 아닌 득음을 한 작가 최소리는 그가 두드리며 낸 소리가 공기의 밀도를 밀어내며 물결 모양의 파장을 만들어내는 것을 온몸으로 느낍니다.우리는 못 보고 그만이 오롯이 오관을 통해 볼 수있는 파동의 무늬이죠.소리의 파동은 진원지를 이미 떠나 먼 우주로 사라지자 비록 응어리와 한은 정화되었다지만. 공허함도 함께 남는다는 것을 깨달은 작가는 첫단계로 파동이 휩쓸고가며 남긴 자국을 수묵 담채로 화폭에 담기 시작합니다.작가가 스스로 공명된 상태, 즉 파토스와 신명의 상태에서 느꼈던 삼매와 몰아의 감정들인 광기과 도취,공포 그리고 격정과 황홀경, 심지어는 극한의 슬픔의 정서가 응어리진 한까지…비록 그것들이 소리가 아닌 시각으로 표현되었지만,우리는 소리가 공명되며 내는 파장을 들리는 환청을 경험하게 됩니다.바로 공감각이라는 우리 인체의 오묘함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이렇게 그가 염원하던 소리를 보여주고자 했던 욕망은 평면화폭의 조형미로 실현되어 또 하나의 단단한 나이테를 추가 합니다.양자 물리학 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피조물에는 고도의 지능을 가진 미립자들로 만들어져 있으며, 이 미립자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파동에 의한 자국을 남기는 방법으로 온갖 다양한 정보를 저장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오래된 성당이나, 절에 가면 저절로 숙연함을 느끼고, 선대로 부터 받은 유품에 유난히 더 정이 가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의미있는 선물이 소중해지는 이유입니다.이 오묘한 우주의 섭리와 자연의 법칙을 스스로 체득하고, 자각한 작가 최소리는 소리의 파장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회화적 작품에 소리를 저장하여 보여주는 데 성공하지요.소리의 파장을 직접 기록하게 될 매체은 소리의 파동 주파수가 가장 높고 에너지가 큰 금속재질 매체들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기에 충분한 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이젠 한단계 더 진전된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소리가 저장되고 그 파동이 물결처럼 퍼져나오는 차원 높은 공감각적 공명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작가 최소리의 이러한 장르와 매체를 초월한 공감각의 예술적 행위는 우리 한민족의 미의식인 신명[神明]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신명은 합리적인 이성이 우리 뇌를 주관하는 때가 아닌, 내몸에서 귀신이 나타나는 상태인 바로 신명[神明]난 상태,순식간에 삼매[三昧]의 일심불란(一心不亂),무아지경,몰아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나타납니다.누구나 이 신명에 이르면 정신적으로 樂하게 되고 육체는 興에 취하게 되지요. 상고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 신명난 상태를 절대적 일자,하늘,우주,대자연과 접화하는 유일한 통로로 인식합니다.우주는 하늘과 땅사이에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천지인[天地人]사상에는 천지를 이어주는 사람인 무인[巫人]의 존재가 필연적입니다.누구보다도 신명난 상태,즉 파토스의 경지에 쉽게 빠져들어 대중을 집단 최면 상태로 이끄는 사람말입니다.이와 같이 상고시대 제천행사에서 발원한 천지인의 신선 사상은 화랑도에 이어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의 풍류정신으로 발현되며 오늘날은 모든 예술가들에게 이어져 발현되는 우리 고유의 사상입니다.작가 최소리는 이미 소리를 통하여 그의 신명을 공명시켜,전 지구인을 집단 최면인 황홀경과 광란,그리고 도취와 격정의 상태를 유발 시킨 경험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의 신명난 한판 소리는 그 자체가 무아지경, 몰아지경의 ‘興과 樂’의 공명으로 전 지구를 연대와 대동의 장으로 만들었지요.작가 최소리는 즐겁고 행복한 樂의 정신적 상태와 어깨춤이라도 덩실거릴 육체적 興에 취하는 신명에서 파생된 樂&興이라는 우리 고유의 미의식을 지닌 초유의 무인[巫人]입니다.이번 전시는 그의 넘치는 에너지가 소리를 넘어서 그 소리를 보여주고 저장시켜, 또 다른 장르로 대중의 공감각을 자극시켜 공명하겠다는 욕망이, 조형의식으로 반영된 회화로도,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전시입니다. 그의 예술적 욕망의 본질과 근원은 예술 장르에 상관없이 동일하며, 다만 구현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번전시는 이미 파토스와의 신명[神明]의 경지를 수시로 넘어본 작가 최소리의 또 다른 예술적 욕망의 분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비록 소리의 파동과 달리 즉시성은 떨어지지만 선사시대 동굴벽화처럼 수만년동안 지속될 소리의 공명을 시각화하려는 그의 욕망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가 소리로 지구를 공명시켰듯이 소리의 저장과 파동이 담겨 조형의식이 반영된 평면회화도 전 지구인을 또 한번 공명시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19-03-07
예술의 탄생
예술의 탄생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예술은 우리에게 지적 고찰로 초대하는 바,그것은 예술을 다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다’독일의 관념론과 변증법으로 유명한 철학자 헤겔의 말입니다. 또한 아서 단토가 철학적 사유가 가능하다고 인정한 몇 안되는 예술가 중의 한사람인 미국의 개념 미술가 조셉 코수스도 ‘예술가의 유일한 역할은,예술자체의 본성을 탐구하는 것이다.’라고 언급합니다.도대체 예술이 무엇이길래 철학적으로 인식하고,그 본성을 탐구해야 할까요? 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헤메던 사유의 고산지대에서 제가 만난 모든 이정표들은 특정한 한곳을 가르키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의 아들로 태어난 삶과 죽음의 신 ‘디오니시스’입니다. 로마신화에서는 박카스로 불리운 ‘디오니시스’는 다른 신들처럼 여러 역할을 맡게 되는데, ‘술의 신,다산과 풍요의 신,생사를 경험한 부활의 신,도취과 쾌락을 추구하는 황홀경의 신’ 등 주로 집단적이고 연대의식과 관련된 제례행사를 담당했습니다. 디오니시스를 모시는 제례의식은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으며,흩어져 살았던 부족들이 정기적으로모여 생존과 번성에 관한 정보를 교류하고,유대와 연대감을 강화시키는 중요한 행사였지요.고대 원시인류는 이 축제를 통해 잠시동안 로고스 [이성,합리...]의 긴장 상태에서 벗어나 집단 파토스[황홀,광기,격정...]상태에 빠지곤 했습니다. 춤과 음악,시...그리고 역할극으로 구성된 제례의식을 진행하는 도중에 참가자는 모두 집단'파토스'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집단 황홀경은 오늘날 남미나 아프리카의 원시부족뿐만 아니라 붉은 악마의 월드컵 응원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관찰됩니다. 바로 그 제례의식의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들이 예술이라 부르는 여러 장르의 예술이 탄생하게 됩니다.연극,서사시,음악,무용,미술등이 그것입니다.특히 미술은 영웅적 행위나 업적,그리고 교훈등이 필요한 상황을 묘사하는데 유용했습니다.또한 디오니시스 제의식에서 맛본 강력한 황홀경에 대한 경험을 동굴벽등에 재현시켜 놓고 추억하는 과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천적으로 나약했던 고대 원시인류는 이런 집단 제의식을 통해 강한 연대감을 구축하고 소원을 축원하며 종족보존 및 생존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그런 이유로 이런 제례의식에 특별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일군의 사람들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겠습니다.그들은 일반인들보다 더 쉽고, 빠르고, 강렬하게 파토스 상태에 빠져들었으며, 그상황을 표현해 왔습니다. 그러지 못한 일반 사람들에게는 원형극장과 같은 공간을 통해 파토스의 간접경험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오늘날 우리는 그들과 같은 역할을 하는 특별한 사람들을 예술가라 부르며 존경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완전한 자유를 누렸던 인류는 필요에 의해 집단 및 공동 생활을 하면서부터 점점 스스로를 제약하고 규제하기 시작합니다.공동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말이지요.비록 현실은 제약와 규제속에 얽매여 살지만, 우리의 본능은 항상 자유를 향한 파토스의 욕망을 꿈꿉니다.하지만 예술가들은 일반인들과 달리 그 욕망을 현실에 구애됨이 없이 로고스와 파토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분출합니다.그 욕망이 연극이나 음악과 무용 또는 시나 소설같은 문학으로 표현되든지 아니면 조형의식이 반영된 미술로 표출되든지 그 욕망의 본질과 근원은 장르에 상관없이 동일하다는 의미입니다.바로 그 욕망의 근원과 본성이 표현된 예술은 이렇듯 인류의 번성과 생존의 반드시 필요한 원초적 불가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19-03-07
현대 미술의 이해
현대 미술의 이해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美의 시원에서 인류의 ‘생존과 번성’이라는 키워드가 진화 생물학적 측면에서 미의식의 생성 메카니즘의 근원임을 알아보았습니다.그리고 디오니시스 제전을 통해 인류의 ‘생존과 번성’의 노하우가 공유되는 과정에서 시나 음악,연극,회화 등의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탄생했다는 것도 살펴보았습니다.이렇듯 ‘생존과 번성’은 통시적 미술사의 신화,종교화,역사화,풍속화,정물화,인물화와 같은 작품속에서 공포와 슬픔, 때로는 풍요와 아름다움의 여러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역사가 발전함에 따라 각 시대의 각인된 ‘생존과 번성’의 유전적 기제들이 발현된 미의식이 각 시대의 특성이 반영된 작품으로 탄생하게 됩니다.수렵과 채집의 원시시대에서는 동굴벽화에서…신화나 종교가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시대에서는 신화나 종교화, 재단화에서…전쟁의 시대에는 영웅화나 역사화 등에서 우리는 쉽게 ‘생존과 번성’이라는 미의식을 찾을 수 있습니다.하지만 현대는 우리의 ‘생존과 번성’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과거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과거에는 전쟁과 기아가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기제였지만,현대에는 질병과 환경오염 등이 ‘생존과 번성’의 위협요인일 수도 있겠습니다. 데미안 허스트의 ‘약’시리즈는 현대에는 질병이 인류의 ‘생존과 번성’에 공포기제로 작용함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해석 됩니다. 하지만 모더니즘 이후 탈정형,비정형 심지어는 무정형의 현대미술은 ‘생존과 번성’이라는 미의식의 키워드로 해석이 가능 할까요?저는 가능하다고 봅니다.19~20세기에 인류는 두번의 세계대전과 혁명,자본주의와 부르주아의 한계,정신분석학의 대두, 고전물리학이 붕괴되고 상대성이론이 등장하는 등 급격한 사회의 변화는 유럽의 지성인들에게 큰 정신적 혼란을 줍니다.퇴폐와 허무주의가 득세하고,해체와 파편,그리고 전체성을 상실한 분업등이 기존의 전통적인 질서를 파괴합니다.현대 미술은 이 과정에서 손상되고 소외된 현대 사회의 부정적 각인으로 탄생한 것입니다.아방가르드 이론의 저자 페터 뷔르거는 현대 미술은 불구화된 형식을 통해 스스로 추해짐으로써 불구화된 현대 사회를 고발하고 저항해야 사회가 변화된다고 했습니다.바로 인류의 ‘생존과 번성’을 위해 추하고,이해하기 어려운 현대 미술이 그 숭고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19-03-07
美의 始原
美의 始原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공룡이 멸종하자 나약한 포유류에 불과했던 인류의 조상은 숲속 나무위에서 초원으로 내려와 직립보행을 하게 됩니다.생존과 종족 보존에 절대적인 위험 요소였던 파충류의 시대가 드디어 종말을 고하고 드넓은 사바나 초원에는 평화가 찾아듭니다. 그동안 자비를 몰랐던 포식자들을 피해 숨어지낸 숲속 나무위나 동굴 생활은 인류에게 선물아닌 선물을 남겨 주게 되는데, 바로 우리 DNA에 각인된 ‘원초적 본능’입니다.특히 나무위에서의 추락 공포는 지금도 우리가 높은 곳에 오르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고소공포증’을 갖게 된 이유입니다.영장류인 인간이 겪는 가장 극심한 고통은 자기 피붙이가 나무위에서 떨어져 포식자들에게 산채로 잡아 먹히는 것을 지켜보는 것입니다.그 엄청난 고통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현명한 우리 조상들은 큰 결단을 내리게 되는데,후손들에게 결코 잊지 못할 공포를 무의식에 심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까지 누구도 예외없이 느끼는’고소공포증’입니다.또한 우리가 지금까지 거주공간인 나무위까지 올라와 인류를 괴롭힌 파충류과 독충의 상징인 뱀과 거미를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단순하고 원초적인 방어기제인 공포가 즐겁고 행복한 상황보다 우리에게 더욱 민감하게 다가오는것은 위험을 회피하여 목숨을 보전하려는 생존과 종족 보존이 당시 인류의 최고 목표였기 때문입니다.하지만 현명한 우리 조상은 불안,공포,분노,슬픔,혐오의 방어적 기제만 유전자로 남긴 것이 아닙니다.그중에는 기쁨과 행복..그리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긍적적인 DNA도 있습니다. 초원으로 내려온 인류는 신체적으로 불리한 직립보행을 하게 되는데, 대신 손을 통한 도구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뇌용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따라서 인류 생존에 필요한 필수 영양소인 단백질과 탄수화물의 섭취를 위하여 수렵과 채집 활동을 하기에는 초원이 최적지이었습니다.단백질 보급원인 거대한 초식동물이 서식하고, 손쉽게 열매등을 채집할 수 있는 초원만한 환경은 없었을 것입니다.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인류의 조상들의 유골들을 초원에서 많이 발굴하게 됩니다. 위험한 시대가 바뀌자 수렵과 채집은 공포기제를 통한 위험 못지 않게 중요한 생존과 종족보존의 요소가 되었습니다.슬기로운 우리 조상들은 수집과 채집에 관련된 기제들 또한 DNA에 각인시켜 후손들에게 물려주는데,바로 초원과 같이 시야가 탁트인 풍광앞에 서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쾌감을 느낍니다.초원은 시야가 확보되어 위험요인을 사전에 파악하여 그 위험을 회피하고.생존에 필요한 식량 채취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또한 초원의 모든 꽃은 뒤에 열매가 열린다는 자연법칙에 따라 후손들이 꽃만 보면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특정 꽃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열매로 변한다는 것을 이보다 더 효율적으로 교육시키는 방법이 있을까요? 물론 이런 인류의 행동조차도 하나의 자연현상으로 보고 적응하여 진화한 꽃도 나타났습니다. 인류의 생존과 종족의 보존을 위해 형성되어,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된 채 내려온 원초적 본능인 미의식은 당대 또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사조와 양식으로 나타납니다.이렇게 발현된 작품들은 또하나의 문화DNA가 되어 같은 방식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유전될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미술작품을 생산하고,그 작가을 응원하며,그 결과물인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는 모든 미술 활동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후손들의 번성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고 숭고한 행위입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19-03-07
한민족의 祭天행사와 예술의 탄생
한민족의 祭天행사와 예술의 탄생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고대 희랍의 酒神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제전은 서양 예술의 탄생의 배경입니다. 1년에 4회, 1주일간 진행되는 이 제전은 그 숭배의 대상이 ‘술의 신’임을 비추어 볼 때, 부대 행사로 화려한 춤과 볼거리 등이 동반된 축제였음을 여러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제전에서 상연된 근친상간과 친족 살해 등의 반인륜적이고 충격적인 비극들은 역설적으로 악이나, 불행, 슬픔, 공포의 정서가 공동체의 ‘善’을 구축하는 초석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정서는 서양미술사에도 영향을 끼쳐, 보기에 아름답다는 보편적 의미의 미개념에 부합하지 않은 ‘공포와 슬픔’이라는 미의식의 논리적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파생되어 로마로 이어진 ‘바카날리아’라는 의례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석자들이 술을 마시고 집단 황홀경에 빠져 춤을 추는 ‘飮酒歌舞’는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 속의 祭天 행사에도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의하면 삼국시대 이전의 상고시대의 역사에는 하늘의 무한성, 절대성 그리고 초월성의 숭고함과 장엄함을 숭배하여 제사를 지내는 ‘祭天’행사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바로 고구려의 ‘東孟', 부여의 ‘迎鼓’, 동예의 ‘舞天’입니다. 동쪽의 사람들이 모여 [孟;비슷한 사람끼리 모임] 북을 맞아, 하늘을 향해 춤을 추는 [舞] ‘飮酒歌舞'의 의례였던 셈입니다. 비록 ‘디오니소스’같은 특정한 神 대신 숭배의 대상이 ‘하늘’이었지만 이런 제의례 행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시기에 여러 문화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서양 예술의 탄생이 ‘디오니소스’제전에서 발원되었듯이, 한민족 고유의 예술적 시원은 우리 역사가 보유하고 있는 ‘祭天’행사에서 찾아도 무방하겠습니다.비로소 우리도 뿌리 깊은 예술의 시원지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제전이나 제천행사에서 파생된 예술 중 시간예술에 속하는 연극이나, 노래 그리고 춤은 원전 상태 그대로 기록 보존이 어렵기 때문에 구전에 의지하거나, 시각예술인 회화를 통하여 그나마 윤곽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술은 여타 예술의 전통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행히도 현명한 우리 조상들은 각종 고분과 벽화에 그 흔적들을 남겨, 후손들의 고유한 美意識을 형성하고,전통 예술을 전승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서양의 ‘디오니소스 제전’이나 우리의 ‘제천행사’에서의 ‘飮酒歌舞’는 집단 최면인 황홀경과 광기, 그리고 격정의 상태를 유발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신이 나타난 神明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무아지경, 몰아지경의 興과 樂의 상태인 것이죠. 신명 나게 놀거나 일하자는 말에서 유추하건대, 신명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인 셈입니다. 즉 흥겹고 즐겁게 몰입해서 신바람나게 놀거나 일하면 비록 그일이 힘든 육체적 노동일지라도 행복해집니다. 즐겁고 행복한 樂의 정신적 상태에서, 어깨춤이라도 덩실거릴 육체적 興에 취하는 ‘飮酒歌舞’의 제천행사에서 파생된 樂&興의 미의식으로 보면 그동안 일본의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존했던‘恨의 美’라는 한국인의 미의식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금방 알 수 있겠습니다. 작가는 樂&興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고,관객은 그런 파장에 감염되어 작품을 감상하면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19-03-07
신명[神明]나는 한판! 한국인의 美意識
신명[神明]나는 한판! 한국인의 美意識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한 공동체의 미의식은 억겁의 세월 속에 DNA에 각인되어 후손들에게 전승됩니다. 기마민족으로 유목을 하며 동진하던 우리민족은 베링해를 건너지 않고 따뜻한 곳을 찾아 남하하다, 삼면인 바다에 갖혀 반도에 정주합니다.유목의 궁극적 목적이 유랑이 아닌 정주인 만큼, 드디어 우리 민족은 반복적이고 체계적인 문화와 사회지능을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단기적으로는 밈[MEME]인 교육과 학습을 통해,장기적 원초적이고 무의식의 직감의 영역인 진[GENE]으로 유전적인 전달이 가능하게 된 것이죠.바로 이과정에서 한국인 고유의 ‘미의식’이 탄생합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인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국인의 미의식을 ‘恨의 美’ ‘白의 美’로 규정합니다.우리 역사와 당시 식민지 상황이 맞물려서 마치 정설처럼 받아들여져 지금까지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아마 930여차례의 외세의 침략과 당시 하얀색의 무명옷을 입고 있던 것을 보고 추론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하지만 이것은 단편적이고 편협한 시각에서 나온 오류입니다. 정주하게 된 우리민족은 농경생활로 의식주가 해결되자 우리만의 고유의 미의식을 가지게 됩니다.바로 ‘興과 色의 미의식’입니다. 농경과 정주민족의 특성상 공동체의 ‘유대와 연대’의식이 반영된 농악,강강수월래,줄다리기와 같은 다양한 민속놀이가 우리는 ‘恨의 민족’이 아닌 ‘興의 민족’임을 증명합니다.또한 화려한 신라의 유물과 고구려 벽화,그리고 방방곡곡에 산재되어 있는 이름없는 정자의 단청만 보더라도 우리는 ‘白의 민족’이 아닌 ‘色의 민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지구촌은 한류[Korean Syndrome]에 빠져 있습니다.K-POP은 물론이고 드라마,영화 심지어 패션과 화장품까지 온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습니다.그동안 숨겨져 있었던 한국인 고유의 미의식인 ‘興과 色의 미의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보는것이 무리일까요? 유대와 연대 의식이 반영된 방탄소년단의 화려한 칼군무가 집단 파토스[Pathos]상태인 ‘興’의 발현이라고 보는 것이 잘못된 해석일까요?이제 우리는 ‘恨많은 白의 美’이라는 패배적이고 퇴보적인 미의식을 버릴때가 됐습니다. ‘興많은 色의 美’라는 새로운 미의식으로 세계를 향해 신명[神明]나는 한판을 벌일 때가 된 것이죠.다음은 바로 우리 미술인의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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